[기고]신경다양성 접근 통해 느린학습자 자립 위한 사회적 지원책 마련해야
우리 경계 청년들도 분명 사회를 발전시킬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
1996년 서울에서 태어난 저는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공연하는 소리, 자동세장 세차하는 소리라든지 소 울음소리, 혹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사자 등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울곤 했다고 합니다. 2000년부터 3년간 미국에서 생활할 때는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어 IEP 교육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언어치료센터에 다니면서 상황에 맞게 말하기 수업 등을 받았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로부터는 자유분방하게 행동한다거나 주의가 산만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었지만 방법을 잘 몰랐고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급우들로부터 ‘장애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차별과 놀림, 따돌림을 당하여 제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했습니다. 또한 중학생 시절에는 바람 잘 날 없이 온갖 학교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학교 수업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같이 제가 어려움을 끊임없이 겪자 결국 서울특별시 어린이병원에서 검사받고, 그 결과 자폐성 장애 3급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생활하면서도 많은 과제와 논문 작성, 시험 준비 등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에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했고 코로나19 상황도 겹쳐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에 틀어박혀 다른 사람과의 소통도 거의 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저와 제 가족에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장학교별을 알게 되어 다니게 된 지 1년 반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리고 성장학교 별에서 선생님들께 많은 걸 배웠고 다른 청년들과도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자유글쓰기, 출판기자단 수업은 제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켰고, 보컬, 싱어송라이터, 합창단, 아자라마 밴드 2기 수업을 통해서는 음악에 대한 제 관심과 전문적인 능력을 길렀습니다.
자립 프로젝트, 생활경제 수업은 제가 앞으로 홀로서기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술 수업을 통해서는 제 그림 실력도 발전하고 여러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쿠키 제작 아르바이트를 통해서는 쿠키 작업을 배우면서 생전 처음 돈을 버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비누와 석고 방향제 제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비누와 석고 방향제를 직접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풋살 등 별스타(별들의 스포츠 타임) 시간에는 스포츠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도 풀고 다른 청년들과 즐겁게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요리 수업에 대한 경험은 앞으로 저 스스로 요리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어 주었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수업에서는 쓰레기의 발생과 그로 인한 환경 파괴를 예방하고 친환경적인 생활 습관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저의 강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역사와 지리, 그리고 지하철에 관심이 많아 그런 분야에 대한 것들, 예를 들면 위인들의 생몰연대라든지 세계 각국의 수도, 지하철 노선 등을 잘 기억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곡명을 알아맞힐 수도 있습니다. 방향 감각이 뛰어나서 경로를 제대로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관심의 폭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관심 분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놀랄 만큼 세부적인 것들을 잘 알고 기억합니다. 학업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학교 수업에는 빠지지 않았고 규칙도 잘 지킵니다. 지난 10월 성장학교별에서 주최한 전시회에 출품한 저의 그림이 독특하다고 칭찬받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성장학교별에서 연극 수업을 들으면서 연기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음악에도 흥미가 있어 성장학교별 소속 밴드인 아자라마 밴드 2기에서 드러머를 거쳐 현재 보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의 부족한 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이해력이 부족하여 국어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저에게는 어렵게 느껴집니다. 작년에는 어린 시절 태권도장에서 알게 되었던 후배에게 속아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사기당하기도 했습니다. 의심을 잘 하지 않고 남의 말을 잘 믿으며 거절을 할 줄 몰라 부모님께서 항상 걱정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사회성이 부족하여 다른 사람과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며 대화를 지속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제는 저와 같은 경계 청년들에 대해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에 대해 제가 생각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경계 청년들은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에게 의존하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 스스로 자립해야 하는 날이 옵니다. 경계 청년들이 자립하려면 안정적인 취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계 청년들의 안정적인 취업을 위해 경계청년취업지원센터를 설치하여 경계 청년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진로 및 직업에 대한 훈련과 실습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생활경제 교육이나 자립 훈련을 통해 저희 경계 청년들이 사회 생활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계 청년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적인 면의 어려움, 심리적인 면의 어려움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어치료, 상담, 심리치료 등이 그런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저희 경계 청년들에 대한 인식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우선 경계선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차별하거나 조롱하지 말고, “저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며,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구나.”라고 생각을 바꿔서 저희 경계 청년들이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를 포함한 경계 청년들은 학창 시절부터 온갖 조롱과 멸시, 차별 등 아픔을 많이 겪어 왔습니다. 저희 경계 청년들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면 비난하고 멸시할 것이 아니라 저희가 제대로 사회에 적응하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저 사람들은 사는 방식이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저희 경계 청년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저희도 그만큼 여러분과 함께 세상을 좋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기업에서도 저희 경계 청년들을 위해 취업의 문을 더 넓혀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경계 청년 개개인의 강점을 활용하여 저희 경계 청년들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다양한 진로를 찾아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희 경계 청년 중에서도 기업, 더 나아가 국가 발전을 도울 수 있는 인재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희 경계 청년들도 분명 사회를 발전시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저희 경계 청년들의 진출 및 활동 분야의 범위를 확대하여 저희가 해당 분야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청소년과가족의좋은친구들 신경다양인 당사자 정현규 청년
강동현 기자 kang_dong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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