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을 이토록 깊게 응시하는 영화라니…
김정의 영화리뷰: 오스카 작품상 후보작
이니셰린의 밴시(The Banshees of Inisherin)
2017년 아카데미상 작품상 수상작 ‘쓰리 빌보드’의 마틴 맥도나 감독의 블랙 코미디. 제95회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2명), 여우조연상, 음악상, 각본상, 편집상 등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최다 후보작이다.
1923년 아일랜드 내전이 끝날 무렵. 파드레익(콜린파렐, 남우주연상 후보)은 이니세린이라는 해안 마을에서 누나 쇼반(케리콘돈, 여우조연상 후보)와 단둘이 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절친이며 민속음악가인 콤(브렌든 그리슨, 남우조연상 후보)이 일방적 절교를 선언한다. 이에 당황한 파드레익은 안절부절 콤의 주변을 맴돌면서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콤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작곡에 몰두하겠다면서 자신의 음악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파드레익과의 관계를 거부한다. 그리고 파드레익이 접근할 때마다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내겠다고 통고한다. 교류를 나누는 사람이라곤 콤과 마을의 유일한 경찰의 아들 도미닉(배리키어건, 남우조연상 후보)뿐인 파드레익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시간이다.
영화는 비극적인 것을 희극화하고 희극적인 것을 비극화하는 맥도나 감독 특유의 표현 양식을, 네 명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인간이 지닌 본질적 외로움에 담론을 펼친다. 그가 주제로 삼고 있는 ‘남자의 우정’이란 감정을 이처럼 깊이 있게 그리고 특별하게 들여다본 영화가 있었나 싶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곡으로 음악을 남기는 것만이 후세에 기억되는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콤과 일상의 ‘하찮은’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파드레익의 대립에서 우리는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영화는 100여년 전 아일랜드의 내전을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캐릭터로 등장시켜 아일랜드 사람들의 칙칙한 특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두 친구의 단절된 우정을 통해 분단된 나라의 슬픈 현실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한다.
‘밴시’는 요정이 앉아 있는 언덕이라는 뜻으로 아일랜드 신화에서 유래된 말.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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