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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어린 왕자]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어린 왕자’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어린 왕자〉는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작품으로, 소혹성 B613호에 사는 어린 왕자가 여러 별을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엮은 동화다. 이 작품에는 삶에 찌들고 허황된 욕망과 탐욕만을 좇으며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많은 생각할 것을 가져다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한때 분명 어린이였던, 그러나 어린이임을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 〈어린 왕자〉는 우리의 과거 모습을 우화의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의 장을 열어 준다. 알게 모르게 철학을 담고 있는 〈어린 왕자〉는 사실 어른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하여 비행기를 고치던 중 어린 왕자를 만난 어느 조종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느 작은 별에 어린 왕자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디에선가 씨앗 하나가 날아와 싹을 틔우고 자나가더니 마침내 꽃을 피웠다. 평소 무척 외로움을 느끼던 어린 왕자는 곧바로 이 꽃을 사랑하게 되어 정성을 다해 돌보아주었다. 하지만 꽃은 무척 거만하고 까다로웠다. 바람막이를 해 달라, 유리덮개를 씌워 달라, 요구하는 것도 많고 불평 또한 많았다. 이에 실망한 어린 왕자는 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6개의 행성에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 일곱 번 째로 지구, 그중에서도 사막에 도착한다. 사막은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그런데 사막에서 만난 뱀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사막이라는 물리적인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도시에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그곳은 사막과 같은 곳이다. 책 속의 화자인 조종사 역시도 어린 시절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봐 왔고, 이런 사람들에겐 보아뱀이나 원시림, 별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카드놀이나 골프 ,정치, 넥타이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어린 왕자도 앞서 6개 행성에서 사람들을 만났지만, 여전히 사막 과 같았을 것이다. 이렇게 사막과 같은 세상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사막에서 조종사와 어린 왕자는 오아시스처럼 알아가기 시작한다.  
 
어린 왕자는 5천 송이가 넘는 장미꽃들이 있는 정원에 다다른다. 분명 자신의 별에서 만난 꽃은 자기와 같은 꽃이 없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수많은 장미꽃 중의 하나라는 생각에 슬퍼졌다. 어린 왕자의 꽃이 이 사실을 안다면 상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여우가 나타나서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왕자가 말한다.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슬프단다,”여우가 대답했다.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여지지 않았거든.”잠시 생각해 본 후에 왕자가 다시 물었다. “길들여진다는 게 뭐지?”“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여우가 다시 말한다.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은 것처럼 환해질 거야. 난 어느 발소리하고도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다.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이 되어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런데 그토록 절절한 관계가 오늘의 인간 촌락에서는 퇴색해 버렸다. 서로를 이해와 타산으로 이용하려 든다.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나와 너의 관계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나’는 나고, ‘너’는 너로 끊어지고 말았다. 이와 같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기 때문에 나와 너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인간 관계가 회복되려면 ‘나’와 ‘너’ 사이에 ‘와’가 개재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될 수 있다. 다시 여우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사면 되니까. 하지만 친구를 팔아 주는 장사꾼이란 없으므로 사람들은 친구가 없게 됐단다. 친구가 갖고 싶거든 날 길들여 봐.”
 
길들인다는 뜻을 알아차린 어린 왕자는 그 장미꽃 때문에 보낸 시간이 자기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임을 알고 이렇게 말한다. “내 장미꽃 하나만으로 수천수만의 장미꽃을 당하고도 남아. 그건 내가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고깔을 씌워주고 바람막이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이 그 장미꽃이었으니까. 그리고 원망하는 소리나 자랑하는 말이나 다 들어준 것이 그 꽃이었으니까. 그건 내 장미꽃이니까.”그러면서 자기를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자기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라고 했다.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그렇다. 현대인은 바쁘게 살고 있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밀리고 돈에 추격당하면서 정신없이 산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피로 회복제를 마셔가며 그저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전혀 길들일 줄을 모른다. 그래서 한 정원에 몇 천 그루의 꽃을 가꾸면서도 자기네들이 찾는 걸 거기서 얻어내지 못한는 것이다. 그것은 단 한 송이의 꽃이나 한 모금의 물에서도 얻어질 수 있는 것인데.  
 
튀르키예의 저항시인이었던 나짐 허크메트는 ‘신과의 인터뷰’라는 시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신의 이름을 빌려 이렇게 조소한다.“사람들의 어떤 점이 가장 신기한가요?”신이 대답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고 갈망하는 것, (중략)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도 미래도 살지 못하는 것,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는 결코 살아본 적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어린 왕자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어떤 별에서 어린 왕자는 우리를 보고 웃고 있을 것이기에.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마다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양 한 마리가 하늘 어디에선가 장미꽃 한 송이를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어린 왕자처럼 걱정할 때마다 우리도 처음에는 아이였음을.... 또 우리 삶 속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기억할 것이다. 지금 우리 세상에서 ‘관계’라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렵다. 어린 왕자도 어려움을 겪었다. 왕자가 살던 행성에서 왕자가 장미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장미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왕자가 장미를 처음 보고 한 말은 “참 아름답군요.”였다. 즉 왕자는 장미의 외면을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이다. 장미꽃은 내면으로는 나약하고 사랑을 갈구하고 순진한 존재이지만, 외면적으로는 자존심 때문에 허세를 떨고 강한 척을 한다. 장미라는 존재는 겉으로는 심술을 부렸지만, 그 심술 뒤에는 애정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서로가 너무 어렸고,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장미의 정원에서 왕자는 쇼크를 받는다. 내가 사랑한 장미들이 이곳에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길들인다’라는 것은 누군가를 자신의 마음에 통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타인에게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나의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고, 그 사람을 위해 헌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80억 명 중 한 명이다. 우리는 평범한 존재이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우리의 역할은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하늘의 별이 될 수 있고, 사막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 군가가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준다는 것은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나에게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는 말은 평범하다. 누구나 절감하는 삶의 근본 문제가 아닌가.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사회적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각 개인은 ‘선택의 여지없이’ 존재의 두 층위에서 살아간다. 하나는 ‘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다. 온전히 착하게 사는 것은 나·우리의 영역에서 동시에 잘 사는 것이다. 그래서 유태인 랍비이자 철학자였던 마틴 부버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태초에 관계가 있었다.”고.
 
〈어린 왕자〉라는 책을 처음 내게 소개해 준 벗은 한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벗이다. 이 책을 대할 때마다 거듭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벗은 나에게 하나의 운명 같은 것을 만나게 해주었다. 지금까지 읽은 책도 적지 않지만, 〈어린 왕자〉에게서처럼 커다란 감동을 받은 책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라고 한 대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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