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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읽기] 영 김 의원 위원장 선출, 왜 의미 큰가

지난 한 세기 동안 미 의회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가장 전문적이고 구체적으로 행동한 의원을 꼽으라면 단연 스티븐 솔라즈 의원이다. 그가 고인이 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이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사회를 이루어 낸 과정에 대해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티븐 솔라즈란 이름이 귀에 익을 것이다.  
 
필자가 만난 최초의 연방 의원이 솔라즈였다. 솔라즈 의원은 1985년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귀국을 감행할 때 전두환 정권으로부터의 암살을 우려해 민주·공화 양당의 현직의원 한명씩이 동행하도록 조처를 했다. 당시 솔라즈는 하원외교위 내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이었다.  
 
솔라즈 의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군사독재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발언과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일로 필자는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솔라즈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래서 아태소위원장인 그의 역할이 아태지역의 평화와 민주주의 발전인 것을 알았다.  
 
그는 1987년과 1988년 뉴욕 한인들의 한국민주화운동 지지 모임에 단골로 참석했다. 또한 미국의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2010년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솔라즈 의원은 1980년 7월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해 미국 정치인으로는 최초로 김일성과 만났다. 그 유명한 ‘김일성-솔라즈 함흥회담’이다. 북미관계 최초의 공식접촉이다. 회담 후 솔라즈 의원은 김일성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과 군축 의사를 있음을 당시 카터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이는 1994년 카터의 평양방문 단초가 되었다 ). 하원 외교위원회 내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의 역할이었다.  
 


남북관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족적을 남긴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은 게리 애커맨 의원이다. 뉴욕의 한인 다수 거주지인 플러싱을 지역구로 34년 동안 하원의원을 역임한 애커맨 의원은 유태계로 필자에게 유태계 커뮤니티가 어떻게 미국에서 정치참여운동을 하는지 가르쳐준 의원이기도하다. 그는 남과 북, 그리고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통해서 긴장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피력해 온 의원이다. 애커맨 의원은 1990년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이 되었다. 그는 아태소위원장 자격으로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북한을 방문했고 돌아오는 길은 비행기가 아니라 판문점을 걸어서 넘어왔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비무장지대(DMZ)를 걸어서 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역시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아태소위원장으로 미주한인사회와 가장 가깝게 일하면서 성과를 낸 의원은 사모아 출신의 애니 팔레오마베가 의원이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아태소위원장을 역임한 팔레오마베가 의원은 소위원장 선출 후 가장 처음 한 일이 2007년 2월15일 열린 하원 외교위원회의 ‘일본군강제위안부 생존자 증언 청문회’였다. 생존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공개적으로 끌어낸 계기가 된 청문회였다. (2017년 이 청문회를 소재로 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강력한 반대 로비로 많은 의원이 청문회를 방해했지만 팔레오마베가 위원장은 꿋꿋하게 강행했다. 이 청문회를 계기로 미국의 주요 미디어들도 일본군강제위안부 문제를 여성인권 문제로 이슈화했다.  
 
그는 위안부 결의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며 본인 사무실에 필자의 자리까지 마련해 줬다. 팔레오마베가 위원장은 어떤 정치적 어젠다도 인권을 앞서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보수우익 기득권의 이해관계에서만 논의되는 것을 돌파하려고 2009년 가을 한반도 평화 관련 하원 청문회 증인으로 처음으로 한국 내 진보계 인사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일본군강제위안부결의안’은 이를 상정시킨 마이크 혼다 의원이 가장 잘 알려졌지만 결의안 통과 과정에서의 최대 공로자는 팔레오마베가 위원장이었다. 그는 경기도 나눔의 집에 거주하던 20여명의 피해자 할머니들과 의형제를 맺고 한국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잘 보살피도록 매년 한국 외교부를 통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2017년 유타에서 치러진 팔레오마베가 의원 장례식에 혼다 의원과 함께 참석했었다. 장례식 조사에서 혼다 의원은 ‘2007년 일본군강제위안부결의안’ 통과는 전적으로 그의 공로라고 했다. 아태소위원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재선의 영 김 의원이 제 118회기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의 ‘인도태평양소위원장’에 선출됐다. 새 회기부터 담당 지역이 인도양으로까지 확대 되면서 ‘인도태평양소위원회’로 명칭이 변했다. 김 의원은 한미동맹 및 북한과 중국 관련 사안, 한일관계 등 바이든 정부의 최우선 외교안보 현안을 다루는 의회 기구의 수장이 된 것이다. 김 의원이 재선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돋보이는 전문성 때문이다. 또 지난 회기 의정활동을 통해 리더십도 인정받았다는의미다.  
 
민족 역량의 확대 차원에서의 한미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가 다루어지길 기대한다. 한인 인도태평양소위 위원장에 대해 기대감이 커진 한쪽에는 유엔사무총장이면서도 회원국인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던 전 한국인 사무총장이 생각났다.   

김동석 / 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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