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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그랜드 마스터트래시(Grand Master Trash)

친구가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미술관 로비에서 서성이면서, 입구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기서 머리가 보였다. “A야, 왔어?” 너무 반가워서 끌어 않았다. A는 헐떡이며 다가온다. 먼 데서 지하철을 내려서 한참을 걸었다고 말한다. “Q 라인 타라고 했잖아.” “잊어버렸어.” 어쨌든 다행이다. 찾아서 오긴 왔으니. 친구는 멀리 뉴저지 중서부에 산다. 
 
이틀 전, 나는 약속도 확인할 겸 A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시 집으로 걸어서  음성 녹음을 남겼다. 세상일이 궁금하지 않은 그녀는 누가 전화를 했는지 카톡에 뭐가 오는지 관심이 없다. 궁금한 쪽은 세상 사람들이다. 지금의 나처럼. 얼마 전까지도 A의 남편에게 전화해서 연락하곤 했다. 남편은 그녀에게 세상을 연결해주는 고리 같은 존재였었다. 나의 녹음을 확인한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뭐 하고 있었는데 전화도 안 받아?” “뭐 좀 만들고 있었어. 카탈로그도 오리고 나무 판에 칠도 하면서….” “지내기 괜찮아?” “밥하는 거에서 해방됐으니 이제 빈둥거리며 살 거야.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일 년 전쯤이다. 추위가 가시고 새 계절이 올까 말까 망설이던 어느 저녁 무렵이다. 식료품으로 가득 찬 창고 같은 차가 우리 집 드라이브 웨이에 잠깐 섰다. A는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트렁크에서 곶감, 스모크드살몬, 브리 치즈를 꺼내서 주었다. 멀리 사는 친구 부부가 오랜만에 장을 보러 나온 외출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기색이 좀 달랐다.  
 


“좀 들어와 쉬었다 가세요.” 운전석에서 내리지 않고 있는 A의 남편에게 말했다. “아녜요, 차에서 내리면 꼬꾸라질 것 같아요.” “우리 집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예요.”  
 
왕복 4시간 길을 아내가 혼자 운전하여 장 보러 오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과 한탄이 섞인 어조였다. 그 사이 친구는 내 귀에 대고 울먹였다.  
 
“키모를 너무 심하게 받아서 지금 복수가 차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야….”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미술관 로비 의자에 걸터앉은 친구는 칭칭 감은 목도리며 장갑을 벗는다. 우리는 티켓을 산 후에 갤러리로 들어갔다. 인디언 문양처럼 화려한 팔각형의 작품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기하학적 디자인이 무슬림 궁전의 장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 그런데, 제목이 Grand master trash였다. 트래시? 쓰레기라니? 자세히 읽어보니 쓰레기를 수거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깨지고 흠이 간 조개로 윤곽을 두르고 덴탈플로스를 여러 개 붙여서 물결처럼 보인다. 쓰다 버린 칫솔을 팜 트리 나무로, 단추를 나무 주위에 붙여서 무슨 탑 같기도 하다. 핑크 보라색 탐폰으로 구름처럼 부챗살 무늬를 만들기도 했다.
 
듀크 라일리라는 작가는 어떻게 쓰레기에 천착하게 되었을까? 브루클린 바닷가에서 노을이 지도록 고독하게 앉아 있다가 파도에 밀려오는 쓰레기를 보았을까. 그러다가 시대를 고민하는 작가답게 환경 문제를 생각했을까. 바닷가에 버려진 연필, 비눗갑, 샴푸 병을 수거해서 닦고 윤내고 칠하고 코팅을 입혔다. 전시장의 한쪽에는 산에서 강에서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나이 든 남자의 비디오가 있었다. 이 작품은 분명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다 보고 나오니 거의 1시가 되었다. 일 층의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A는 갈 때는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A는 길을 다 찾아서 종이에 적어주던 남편이 정말 아쉽다고 한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A. 친구는 제2의 인생을 가고 있는 듯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못 갈 것도 없는데” A는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널따란 등짝이 지하철역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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