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업] 존엄사, 안락사와 생명 윤리
얼마 전 플로리다주의 한 말기 환자 병동에서 환자의 부인이 남편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은 병이 위중해지자 존엄사를 원했다고 한다. 부부는 ‘살해 후 자살’ 시나리오를 계획했고 남편은 숨졌지만 부인은 자살에 실패했다. 플로리다주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곳이라 부인은 살인혐의로 구속됐다. 숨진 남편에게 증상 완화를 위한 호스피스 치료를 제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존엄사나 안락사의 해당 범위나 시행 규정은 국가에 따라 다르다. 존엄사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스스로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안락사라는 것은 의사 (또는 면허가 있는 전문인)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들이 죽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을 일찌감치 제정하고 시행해 온 국가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범주가 넓어지면서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생명윤리를 배반하는 숨겨진 사례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선천성 기형, 치매, 극심한 청각장애, 만성간경화, 폐쇄성 질환, 면역 결핍증 환자들이 안락사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차트조차 정확히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이런 병들은 불치병인 것은 맞지만, 금방 죽을 병은 아니다. 고혈압, 당뇨도 완치되는 병은 아니지만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를 통해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사용되는 용어도 ‘존엄한 죽음(death with dignity)’, ‘자의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 ‘의사조력 사망(physician assisted death)’, ‘임종 의료지원(medical aid in dying:MAiD)’, ‘조력사망(assisted dying)’, ‘타의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 등 다양하다. 어떤 경우가 ‘존엄사’ 이며, 어떤 경우가 ‘안락사’인지 혼동되기 쉽다.
우리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태어난 것처럼, 때가 되면 예외 없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죽음은 자연사, 사고사, 존엄사, 안락사 등 네 가지 길을 통해서 도달한다. 아파서 죽는 것은 자연사, 피살은 사고사로 분류된다. 존엄사는 본인이 행하는 것이고, 안락사는 고통경감을 위해서 조기 사망을 유도하는 것인데, 타인이 죽는 과정에 개입한다. 어떤 죽음을 존엄, 또는 안락사라고 할 수 있을까? 종교적 가치관은 차치하더라도 인위적인 사망을 윤리적으로 또 법적으로 타당하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벨기에는 존엄사와 안락사를 허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불치병이나 말기 질환 때문에 고통 받는 환자 중에, 남은 삶이 6개월 미만일 때 안락사를 허용한다. 시행 20년이 지나면서 안락사 숫자가 10배나 늘었다고 한다. 2014년에는 아동에게도 이 법을 적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얼라이언스 비타(Alliance Vita)라는 프랑스 인권단체는 지난해 벨기에의 규정 적용이 갈수록 느슨해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도 지난해 10월 ‘존엄한 죽음’을 위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 및 의사 조력사망 법제화에 대한 안건이 인권위에 제출되었다고 한다. 두 안건 모두, 인위적 죽음에 관한 것이다. 한국은 몇몇 선진국들처럼 제한적인 연명의료결정법이 있지만 아직조력사망, 또는 조력 존엄사를 입법화하지 않고 있다. 조력 사망은 대다수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한국(26명/10만명, 미국 14.2명/10만명)을 생각할 때 존엄사, 안락사는 염려스럽게 다가온다. 생명의 귀함을 무시하고, 아파서 괴로워한다고 인위적 죽음을 제시하거나,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도록 종용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은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 지침서(advanced directive)를 준비해 놓고, 사회는 개개인의 행복한 삶,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이미 잘 만들어진 시스템을 이용하도록 돕고, 말기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호스피스제도를 충분히 활용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생명을 놓고 거래하거나, 법을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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