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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어떻게’가 빠진 총기난사 예방 대책

류정일 사회부장

류정일 사회부장

모두가 동기가 뭐냐고만 묻는다. 역시나 왜(Why)에만 집중한다. 어떻게(How)는 실종됐다. 자주 봐온 상황전개. 몬터레이 파크와 하프 문 베이 총기난사 사건 이야기다. 거의 모든 미디어, 정부기관, 수사당국, 커뮤니티, 학자, 한국의 지인들도 총격범이 ‘왜’ 그랬는지 궁금하단다. “옆집 부부 싸웠대”를 들으면 “왜 싸웠대?”로 받아치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하지만 궁금증을 가장해서 ‘우리 부부는 안 싸웠지’란 점을 대리만족하려는 속내도 있을 것이다.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 가장 동기에 집착하는 쪽은 총기회사나 총기 옹호론자다. 잘만 알아내면 총기 규제 목소리를 희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장을 더 해 차량 급발진 사고가 나면 운전자의 과실로 몰아가는 자동차 회사처럼, 총기회사는 총격범의 개인적인 문제가 대두하길 원한다. 이런 식으로 거의 예외 없이 총기난사 사건은, 궁금한 건 못 참는 인간 심리와 이익단체가 만든 프레임이 이끄는 대로 종결됐다. 이번 비극도 총격범의 범행 동기를 좇는데 에너지를 다 쓴 뒤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라는 담론은 또다시 흐지부지 사라질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안쓰러운 건 재발을 막고 예방을 위해 ‘어떻게’에 집중하는 총기 규제 찬성론자들조차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부분이다. 특히 이들은 자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통계에 쉽게 당한다. 이번에도 ‘새해 들어 벌써 38건’, ‘100명당 125자루 총기 보유 세계 최대’, ‘10만 명당 총기난사 사망 4건 세계 1위’ 등이 즉각 터져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준비해 놓은 듯, 몇 달 전에 봤던 것보다 더욱 자극적이다.
 
그런데 대중의 관심은 쉽게 휘발해 버린다. 특정 자극에 반복해서 노출되면 둔감해지니까. 10초도 안 되는 짧은 길이의 틱톡 영상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이런 자극은 관심 밖이다.틱톡을 몰라도 이런 식의 통계 자극에 자주 노출되면 반응의 강도와 빈도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면 이런 과정을 통해 오히려 안정감을 유지하는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
 


재발을 막을 방법론을 고민해봤다. 누군가 범행 동기는 열심히 찾을 테니 그 결과를 가지고 단계별로 예방책을 켜켜이 쌓아두면 어떨까.
 
프랑스 영화계의 극단주의자인 가스파 노에 감독의 2002년작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에 대입하면 좋겠다. 주제와 소재, 표현 수위까지 모든 것이 불편한 이 영화는 거꾸로 진행된다. 그렇다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처럼 난해한 수준은 아니다. 그저 영화의 시작이 사건의 결말이고, 끝이 스토리의 시작이란 이야기다.
 
노에 감독은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주제에 맞게 10여분 길이로 챕터를 나눠 시간의 역순으로 사건을 보여준다. 챕터가 나뉘는 편집 점은 선택 직전의 순간들로 이미 영화 시작과 함께 잔혹한 결말을 본 관객 입장에서는 ‘이때라면 돌이킬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들게 한다.
 
이번 두 사건도 시간의 역순에 맞춰보면 예방 노력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총격범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게 현장에서 누군가 막았다면, 잠재적인 난사범이 대량살상 무기를 살 수 없게 제도적으로 규제했다면 어땠을까. 더 근본적으로 정치권이 232년 전 만든 수정헌법 2조를 개정했다면, 하다못해 총기규제법이라도 강화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좀 더 과거로 올라가 용의자가 괴롭힘당하지 않도록 주변이 배려했다면, 증오심을 키우지 않도록 누군가 호의를 베풀었다면, 나이 든 이민자가 느끼는 소외감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어쩌면 비극은 막았을지 모른다.

류정일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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