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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입에게 휴가를

“크리스마스인데 와인 한 병 사 올까?” 작년 크리스마스 날 남편이 물었다.
 
“나는 별로 생각 없는데. 마시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요.”  
 
“나도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아. 생각만 해도 신맛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듯해. 술 없는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야.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
 
“나도 그래요. 더는 몸이 견딜 수 없다는 듯 반항해. 끊으라는 신호야. 다행이지 함께 신호를 받았으니! 술값 굳어서 얼씨구. 무거운 술병 끌고 다니느라 굵어진 팔뚝 가늘어져 절씨구. 물가도 올랐는데 잘됐지. 술값 대신 저녁 반찬 하나 더 얹어줄게요.”  
 


남편은 1990년 초 사회적으로 요란한 금연 캠페인과 더불어 어처구니없이 치솟는 담뱃값에 놀라서 단칼에 끊었다. 술은 끊으려고 하지 않았던 탓이 컸던지라 작년 봄에서야 끊었다. 갑자기 몸에서 ‘술 좀 그만 마셔라 제발’ 하는 신호가 왔다. 뭐 굳이 끊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매일 하던 짓이 멈춘 것이다. 올봄이 오면 거의 일 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정말 끊은 것이 아닐까?  
 
이제 질병과 화근이 들어오는 입만 다물면 된다. ‘나이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말이 시중에 나돈다. 나는 지갑을 열었다가 욕만 먹은 적이 있다. 지갑을 열려면 활짝 열든지 아니면 한번 열었으면 계속 열 것이지. 지갑 열면서 입을 다물지 않았다느니 하는 비아냥 소리가 들렸다. 입도 닫고 지갑도 닫는 것이 낫겠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입까지 자주 주절대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건강도 몹시 해친다. 초겨울로 접어들면 빠짐없이 목감기가 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입을 열어 목감기를 앓다가 속이 뒤집혀 밥을 먹지 못하고 결국엔 이석증까지 동반하는 병치레를 많이 했다. 입만 다물면 적잖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질병이 들어오는 벌리고 자는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잔다.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벗은 지금도 나는 쓰고 다닌다.  
 
팬데믹으로 사람들을 자주 대면할 기회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스님처럼 침묵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전화 통화를 즐기지 않아 말할 기회도 적다. 그런데 장기간 다문 입이 기회가 오면 저절로 열려 따발총 수다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입만 다물면 잘났다고 남에게 하는 지적질도 멈출 수 있다. 지적질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 마음이 편해진다. 정신 건강에도 좋은 입 다물기가 담배나 술 끊기보다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며 목말라도 참는, 햇빛을 향해 창가를 조용히 내다보는, 꽃을 피우고 방긋 웃으며 나를 반기는 선인장을 닮도록 애써 봐야겠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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