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덤으로 얻은 삶을 기념한 여행
2013년 1월에 남편의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수술을 받았다. 남편의 콩팥을 바로 옆 수술실에서 전달받아 목숨을 건진 일이 이젠 추억이 되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벌써 10년, 당시의 심정으론 일 년만 더 살아도 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덤으로 산 세월이 10년이라니 기적 같다. 그걸 기념하여 남편이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여행을 다녀왔다.이식 수술을 받고 나선 투석을 받지 않게 되어 삶이 무척 간단해졌지만, 기운도 없고 면역력도 없는 상태로 하루 한 움큼씩 약을 먹는 평생 환자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도 감사한 일이다. 이승과 저승이 어찌 비교 가능한 곳이겠나 말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좋다는 이승에 살고 있으니.
매일매일 사는 것이 조금씩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긴 해도 죽음을 예상하거나 기대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나도 이런 큰 수술이 없었다면 막연하게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살았을 것이다. 게으른 내게 정신 번쩍 들게 한 사건이었고, 남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멀리 사는 동창들과 혈족들의 성원과 보살핌, 마치 우렁각시 같았던 도움의 손길들과 중보 기도의 힘을 생각하면 삶은 내 의지로 내 힘으로 사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긴 여행은 부담스러운데 신장을 떼어주고도 평생 옆에서 간병인 노릇을 하는 남편의 도움으로 무사히 다녀왔다. 파나마 운하를 보는 15박 16일의 중남미 크루즈였다. 기항지에서 외출하여 현지 투어를 결정할 땐 내 체력에 맞는 걸 고르느라 고민해야 했다. 못 갈 경우엔 가져간 책도 읽고 배에서 빌린 스쿠터를 타고 크루즈 안 마을을 속속들이 구경 했다.
스페인 왕실이 후원한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 미국과 중앙아메리카 대륙의 일부를 발견하였다. 15세기 무역 중심으로 부상한 콜롬비아는 나라가 부강해지자 외세의 침입을 받게 되고 곳곳에 요새를 세우고 나라를 지킨 흔적이 남아있다.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한 나비효과가 결국 100년 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고 하니 흥미롭다.
수주일이 걸리던 뱃길이 파나마운하가 만들어지면서 반나절로 단축되었다고 한다. 크루즈 배 한 척이 꽉 끼일 정도의 좁은 운하를 빠져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3단계로 수위를 조절한다는데, 그런 신기술의 공사가 1903년에 시작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구한말 하와이로 향하는 최초 이민선 갤릭호가 1903년에 떠나지 않았던가?
‘독서는 앉아서의 여행이고, 여행은 길에서 하는 독서이니 독서는 지식이고 여행은 사색이다. 독서로 혜안을 얻고 여행에서 개안한다’. 이런 흐뭇한 글귀가 있다. 앉아서 하는 여행인 독서만 하다가 서서 하는 독서인 여행을 했으니 삶이 무척 풍성해진 기분. 곳간에 쌀 들인 듯 넉넉한 마음이다.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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