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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사막의 별이 된 황갑주 시인

‘사막의 시인’으로 알려진 황갑주 시인이 지난해 10월27일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주위에 알리지 않고 가족장으로 조용히 예식을 마쳤다고 한다. 그래서 문단에서도 모르고 있었다. 고인의 생전의 삶에 어울리는 깔끔한 마무리였다.
 
하지만, 고인의 예술세계와 미주한인문학에 남긴 업적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황갑주 시인은 미주한인문학의 첫 페이지를 펼친 중요한 문인이다. 미주한인문학계 최초로 발간된 동인시집 ‘지평선’의 산파역을 담당한 것이 바로 황갑주 시인과 언론인 이선주였다. 고원, 마종기, 황갑주, 최연홍, 김시면, 김병현, 석진영, 정용진 등 시인 10명의 작품이 수록된 ‘지평선’ 제1집이 발간된 것이 1973년이니, 꼭 50년 전의 일이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이 ‘지평선’을 미주한인문학의 출발점으로 본다. 그러니까, 미주한인문학의 역사도 올해로 50년이 되는 셈이다. ‘지평선’은 4집까지 발간되고 그쳤고, 그나마 제1집과 제2집은 타자기로 쳐서 만들어진 수공업적인 책자였다. 하지만 재미동포문단에서 나온 최초의 동인지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정효구 교수는 이렇게 논문에 썼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평선’은 1940대 초 만주의 망명문단이 엮은 ‘재만조선인시집(在滿朝鮮人詩集)’ 이후 두 번째로 해외동포문단에서 발간된 동인지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주한국문인협회 문예지 ‘미주문학’의 모태가 된 것으로도 그 의의를 갖고 있다.” 이 동인지에 참여했던 시인들의 증언이나 연구들이 남아 있어, 역사적으로 정리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황갑주 시인의 작품세계는 크게 사막의 노래, 민주화운동과 항쟁시, 통일 염원 노래, 그리움의 노래의 네 줄기로 나누어볼 수 있겠다. 황갑주 시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겨레와 조국에 대한 짙은 사랑의 마음이다.
 


황 시인은 ‘사막의 시인’답게 사막을 노래한 시를 많이 썼다. ‘사막기’ 같은 시집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시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애리조나 피닉스 등지의 사막에 살면서 사막의 정서를 직접 몸에 익히고, 아메리칸-인디언 문화에 심취하여 전문가 수준의 깊은 연구를 했고, 이에 대한 많은 글을 발표했다. 글자 그대로 사막을 사랑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막’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황량한 이민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황갑주 시인은 조국의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대표적 저항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1980년 5월 광주 민주항쟁의 정신을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7인 시집 ‘빛의 바다’ 발간을 주도했고, 그 뒤로도 ‘라성에서 본 광주하늘’ 등 광주 정신을 알리는 여러 권의 시집을 펴내는 일에 힘썼다. 한국 내에서는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간된 이 책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황갑주 시인은 통일을 염원하는 시에 집중했다. 특히 말년에는 그 동안 썼던 통일시들을 정리해서 시집으로 펴내는 일에 열중했다. ‘조국아 너를 사랑한다’ ‘시인이 쓴 통일노래’ 등이 대표적인 작품집이고,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황갑주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통일시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두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아가 하나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 평생에 이런 날이 올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나의 노래는 호흡이 멈추는 그 날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이제 사막의 별이 된 황갑주 시인은 하늘나라에서 뜨거운 사랑의 시를 쓰고, 가까운 벗들에게 정겨운 손편지를 부지런히 써 보내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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