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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소나무

나는 지금 80가구가 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타운하우스에 살고 있다. 펜스 안에 있는 손바닥만 한 땅에는 오렌지 나무가 있다.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키가 마냥 자라 내 키의 세배나 된다. 봄에는 조그맣고 하얀 꽃들에서 나오는 향기가 바람에 날려 온 동네에 퍼진다. 가을이면 열매가 다닥다닥, 한 가마니 넘게 열린다.  오렌지 나무 가까이에 감나무도 있어 거리 두기를 하려고 옮겨 심었더니 키는 큰데 주먹만 하게 탐스럽게 열리던 홍시는 도토리 크기만 한 고욤으로 변했다.  고욤나무에 감나무 가지를 접붙여야 하는데 몰랐다.  어차피 관상용으로 키우는 것이라 그래도 상관없다.    
 
우리 집은 낮은 펜스 하나로 타운하우스의 공동 구역인 공터와 맞대어 있다. 그 펜스 바로 너머에는 내가 손대지도 않은 우람한 소나무 두 그루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는데 키가 족히  30~40미터는 되는 것 같다. 소나무들을 한눈에 담으려면 고개를 90도가량 하늘을 향해 젖히고 보아야 나무 끝을 볼 수 있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일이 제대로 안 풀릴 때는 창문을 열고 씩씩하게 치솟은 그 소나무 형제를 보며 기를 받는다.  
 
소나무는 꺾이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이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 가사 2절에 나오는 소나무는 바람과 서리를 이겨 낸 불굴의 기상을 상징한다.  또 ‘소나무여 소나무여 언제나 푸른 네 빛, 무더운 여름철이나 눈 오는 추운 겨울도 소나무여 소나무여 변하지 않는 네 빛’. 어려서 즐겨 부르던 이 노래는 원래 독일의 민요이다. 후에는 독일에서 널리 사랑받는 성탄절 노래가 됐다. 이 노래의 가사는 ‘탄넨바움 (Tannenbaum)’  즉 전나무인데 소나무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전나무와 같이 늘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미지 때문에 한국에서는 소나무로 번안했다고 한다. 소나무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한겨울 차가운 눈보라가 몰아친다고 하더라도 늘 푸른 빛을 발한다.  
 
소나무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이다.  세한도가 제작된 배경은 19세기 전반 세도정치와 관련이 깊다. 똑똑하고 총명했던 명문가 자제 김정희는 반대 세력인 안동 김씨의 모함으로 55세 때 억울하게 제주도로 유배를 떠났다. 조선 시대에 유배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언제 유배가 풀릴지 기한이 없었다. 3년이 지나도 김정희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희를 사형에 처하라는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죄인 김정희를 변함없이 대하는 제자가 있었다. 바로 중국어 통역관 이상적이었다.
 


 이상적은 정성을 다해 연경(베이징)에서 책을 구해 귀양살이하는 스승에게 보내 드렸다. 유배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던 김정희에게 서책은 유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 김정희는 “세상은 흐르는 물살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에만 수없이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여 겨우 손에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 주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초췌하고 초라한 나에게 보내 주었구나” 라며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주었다. ‘세한연후(歲寒然後) 송백지후조 (松柏知後凋)’,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공자 말씀이다. 이상적을 추운 겨울에도 잎이 조락하지 않는 송백에 비유한 것이다.  
 
새해가 되니 또 다들 새해의 결심을 들먹인다. 난 그 결심을 포기한 지 오래다. 어디 나뿐이겠는 가. 작심삼일이라고 지키지도 못할 결심을 정해 놓고 지키지 못하니 부끄럽다. 그래도 코로나 전에는 커뮤니티 센터에 등록해 일주일에 세 번은 타이치와 에어로빅 운동을 했는데 코로나로 커뮤니티 센터가 문을 닫고, 나는 오랫동안 한국을 방문했었다.  또 지난해 LA로 돌아오자마자 여기저기 아프다 보니 몸이 더욱 쇠약해졌다.  
 
새해의 결심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을 게 아니라 꼭 운동을 꼭 해야 한다. 그런데 계속 춥고 비가 오는 거였다. 캘리포니아의 오랜 가뭄으로 물 부족 상태가 심각한 터라 비가 오면 반가워야 할 터인데 새해를 산뜻하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비가 오는 날씨가 꿀꿀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난해 12월 6일, 12년 만에 월드컵 16강행을 이끌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한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중꺾마’를 언급했다.  손흥민은 이날 귀국 후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 내내 회자한 ‘중꺾마’가 선수들의 투지를 살려주었는데 이 말은 비단 축구 선수에게만 해당되는 밀이 아니다. 앞으로 모든 국민이 이 ‘중꺾마’ 정신으로 앞으로 전진하기 바란다” 라고 말했다. ‘중꺾마’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준말로 카타르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사회에서 화두가 됐다. 2022년 연말 대한민국에 가장 뜨거웠던 유행어로 리그 오브 레전드 2022 월드 챔피언십을 보도한 기사의 제목에서 유래된 말이다.  
 
새해 들어 6일 만에 비가 그쳤다. 아침에 창문을 여니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함께 소나무 형제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 푸르름과 청정함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 소나무를 보며 ‘중꺾마’를 생각했다. 올 한 해 소나무의 기상과 불변함, ‘중꺾마’ 정신으로 살고 싶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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