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워싱턴 한인사회를 관통한 키워드는?
"한인단체 위상추락부터 벤자민 정 부부 사연까지" 한인사회 10대 뉴스
2022년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새 해, 새 마음을 준비하며 다사다난 했던 한 해를 정리하는 날이다. 올 한 해 워싱턴 한인사회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우리 사회를 관통한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 워싱턴 중앙일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올 한해 주요 뉴스들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
추락하는 한인 단체들
가장 극적인 사건은 워싱턴 한인 단체들의 거듭되는 몰락이다. 20만 한인들이 모여 있다는 워싱턴 수도권 지역에 한인들의 구심점이 실종됐다. 이 중, 모든 한인들의 맏형 노릇을 해야 할 70여년 역사의 워싱턴지구한인회연합회의 파행은 충격적이다. 워싱턴한인연합회는 2022년말 현재, 사실상 회장 한 명이 모든 역할을 하는 '1인단체'로 전락했다. 신문지상에 오르는 대부분 한인 단체들의 비슷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인재가 없고", "회장이 돈 쓰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주로 나온다. 워싱턴 한인연합회의 경우를 다시 보자. 1년여전에 이미 끝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이유로 150명으로 정관에 명확히 규정된 총회 성원을 어기고 10명을 출석시켜 "연임을 인준했다"는 스티브 리 회장은, 수년간 워싱턴 지역 최대 한인축제로 자리매김 했던 '코러스 축제'도 '문화적 다양성'을 이유로 "그저그런 지역 아시안 축제"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또한 대형 카지노의 후원으로 카지노 인근 주차장에서 한인 축제를 열어 비판 받은 '메릴랜드 한인회'와 소송 및 분규 사태에 휩싸인 '버지니아 한인회' 등 거의 모든 한인 단체들이 홍역을 앓았다. 이런 가운데, 한인사회의 패러다임은 새로운 차세대 리더의 등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기대도 존재한다. 한인사회의 리더 자리를 겨냥하는 차세대들.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그들의 선택에 한인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다.
장경필 씨 구치소 자살 사건
3월29일 발생한 장경필 씨 구치소 자살사건은 워싱턴 한인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논란이 있지만 무면허로 마사지 일을 했던 장 씨는 젊은 한인 여성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해 구속 당했고, 무죄를 주장하며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본보의 취재결과 사건 속에는 주류언론에 보도됐던 사실 이상으로 수많은 이면이 존재했다. 한인사회에는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고 구치소 측의 부실한 제소자 관리, 변호사와의 소통 문제, 언론의 자극적 보도에 대한 본보의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장씨 사건은 현재까지도 그 결론이 명확치 않다. 다만, 유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원통한 침묵 속에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함축돼 있을 뿐이다.
페어팩스 한인여성 살해사건
3월5일에는 페어팩스 카운티에 거주하던 한인 여성 한나 최(35) 씨가 남자친구인 호엘 모소 메리노(27)에게 살해당해 유기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수사 결과 최 씨는 헤어진 남자친구인 메리노 씨와 심하게 다투다가 우발적으로 살해 당했고, 메리노는 그런 최 씨의 사체를 메릴랜드 에코키크 지역 피크카타웨이 공원에 유기했다. 경찰은 메리노를 지명수배 했지만 현재까지 그의 소재는 불명확하다. 유가족들은 용의자의 빠른 구속과 진상규명을 원한다. 이 사건마저도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의 수많은 한인 관련 미제사건으로 남겨지게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이해민 양 사건 범인, 무죄 석방 파문
199년 볼티모어 한인 여고생 이해민양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아드난 사이드(41)가 '무죄'로 밝혀지며 석방된 사건 아닌 사건은 한인사회는 물론 미국 주류언론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이런가운데, 본보는 사이드에 대한 석방 결정이 단순한 사법부의 판단이 아니었으며, 부패 혐의로 재판을 앞둔 볼티모어 검사장 메릴린 모스비가 자신에게 '의로운 검사'라는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사법적 쇼'에 가까운 결정이었다는 기사를 내보내 큰 격려와 성원을 받았다. 현재 이해민 양 유족들은 '졸속 석방'과 '유가족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석방을 결정한 점'에 대해 볼티모어 시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진범이 밝혀지지 않은 이해민 양 사건은 이제 또다시 현재진행형이다.
코로나로 인한 한인교회 감소
코로나 팬데믹 사태의 영향으로 불과 2년간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지역 한인교회 총 81개가 문을 닫았다. 전국적으로는 무려 650개 교회가 감소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같은 재미한인기독션교재단(KCMUSA)의 발표는 한인 교계에 경각심을 이끌었다. 팬데믹 사태로 인한 한인 교계의 '빈익빈 부익부' 구조가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제기됐다. 교계는 "한인교회 감소는 한인 세대의 변화와 '한인'이라는 민족적 동질성 약화가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으며 한인교회 활성화를 위해 대책을 고심 중이다. 한편 워싱턴 지역에서는 워싱턴지역한인교회협의회(회장 심대식)를 중심으로 한인 교회들의 고른 발전 등을 모색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지난 봄, 워싱턴 한인사회를 뒤흔든 사건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친위세력과 범진보세력의 통합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게 힘겹게 맞서던 윤석열 당시 국민의 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 당 대선후보의 단일화는 '충격'처럼 워싱턴 한인사회를 뒤 흔들었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로 민주당 지지층과 진보 시민단체가 전면에 나섰던 워싱턴 한인사회의 정치적 기류도 변했다. 윤 대통령의 당선 이후 전통적인 워싱턴 지역 보수 우파 인사들이 한인사회 전반에 부각되며 힘을 얻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전쟁을 겪었던 한인 노년층에게 특히 충격을 줬다. 공산국가의 종주국인 러시아가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상황과 비슷했고, 미국의 지원으로 맨주먹과 다름 없는 병사들이 무장해 거대한 러시아의 침략을 물리쳐 가는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한인들은 구호성금, 기금마련 콘서트 등 갖가지 방법으로 우크라이나 돕기에 나섰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 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제기됐다. 휴전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 과거 영토를 모두 수복하겠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야심이나, 유럽의 경제적 위기, 에너지 대란 나아가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부각되며 종전압력이 커지는 상황이다.
벤자민 정 씨 부부의 사연
본보는 올 해도 각종 미담기사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들에 대한 소식을 꾸준히 전달했다. 그 중, 페루로 자원봉사를 떠났던 북버지니아 한인 벤자민 정 씨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으며, 그의 백인 아내가 그를 살리기 위해 한인들의 도움들을 바란다는 소식은 워싱턴은 물론 전국 한인사회의 반향을 일으켰다. 식물인간 상태로 전재산을 치료비로 쏟아붇고, 미국에 돌아올 비행기 삯도 마련할 수 없는 부부의 딱한 사연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자아냈고 본보에는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는 전화와 이메일이 쇄도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10만달러 이상의 재원이 고펀드 미 등을 통해 모였고, 벤자민 정 씨는 페루에서 극진한 정성과 보살핌, 의료적 지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태원 참사 사건
이태원에서 154명의 목숨을 앗아간 10월29일 핼러윈 비극은 워싱턴 한인들에게도 충격 그 자체였다. 세계 최악의 압사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그 날의 악몽은 미국 주류언론의 큰 관심 속에 비중있게 보도되기도 했다. 한인들은 "젊은이들의 소중한 목숨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사라졌다"며 침통해 했고, 각종 모임이나 술자리까지 자제하는 분위기가 한인사회 전반에 연출됐다. 본보는 중앙일보 문화센터에 조문소를 설치하고 각계각층 한인들의 조문을 받았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비롯 조문소를 찾은 인사들은 철저한 사고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한인들의 미국 정치 무관심
11월 중간선거는 2022년 미국정치의 가장 큰 이벤트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중간심판이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부활의 잣대였던 이번 선거는, 역설적으로 워싱턴 한인들의 정치 무관심을 증언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한인들의 선거 참여가 압도적으로 늘어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는 미국 정치씬이 제기하는 이슈들이 한인들의 이민생활과 동떨어져 있으며, 한국정치에 대한 관심이 SNS의 발달로 오히려 높아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한인 정치인들의 연방의회 입성이 늘어나고, 캐스팅보트 역할로서 한인들의 표심이 주류 정치인들에게 어필할 경우, 한인들의 정치역량은 극적으로 높아질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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