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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크루즈 이야기

꼭 집어낼 수 없는 온갖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쳐 있을 때, 지인 한 분이 캘리포니아 남쪽 크루즈 여행을 제안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편리한 7일 일정의 코스. 이미 다녀온 곳이지만 집 떠나 망망대해로 훌쩍 나갔다 오기만 해도 숨이 트일 것 같아, 선뜻 따라나선 3년 만의 여행이다.
 
화창한 햇살이 출렁이며 따라오는 창밖으로 4년 전까지 10년이나 살았던 낯익은 콘도와 길 건너 오라클 자이언트 야구장이 지나간다. 곧 샌프란시스코 피어 27에 도착해 짐을 체크
 
하는데, 함께 갈 일행을 태운 우버 차량이 막 차도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각각 정해진 방으로 들어가니 그들은 15층, 우리는 11층 탁 트인 방이 아늑하다. 일행과 정해진 식탁에서 매일 저녁을 하게 되었는데, 격식을 갖추어 생선엔 흰 와인을 고기에는 붉은 와인을 주문했다.
 


짐짓 신경을 쓰기도 했던 알레그라 홀 중앙의 원형 테이블. 우리는 매일 그 테이블에서 헤드 웨이터인 사카이와 사근사근한 젊은 니오만의 서브를 받았다. 사카이는 장장 20년이 넘게 크루즈에서 일한 필리핀 출신의 중년. 인도네시안인 니오만도 8년을 배에서 일해온 베테랑이다. 그들은 8개월은 가족과 헤어져 배에서, 4개월은 모국에서 가족과 지낸다고 했다.
 
몇 해 전 어떤 크루즈에서 ,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헬퍼들만의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각기 자기 나라의 고유 의상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전통춤과 노래, 악기를 연주하는 장기자랑 무대였다. 그들의 무대는 크루즈의 전속 댄서와 뮤지션들의 완벽한 쇼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관객들을 열광케 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없었던 20년 전에는 항구에 도착하면 가끔 집으로 전화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배려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1000명에 이르는 승무원들은 길게 줄을 서서 지정된 3분 동안에 ‘하이, 바이’로 가족의 음성만 듣고 전화를 다음 사람에게 넘겨줘야 했단다. 가족이 많으면 ‘하이’ 만하고 ‘바이’는 생략했었다는 시절이다.
 
사카이처럼 나이가 있는 숭무원은 자녀가 학업을 마치면 배를 떠난다고 한다. 9살과 3살의 자녀가 있는 니오만은 크루즈 승무원 생활을 더 할 계획이라며 요즘은 휴대폰으로 쉽게 가족들과 화상 통화도 가능해 예전과 비할 바 아니게 행복하단다.
 
드디어 크루즈 마지막 날. 매일 1만2000인분의 요리해 만든다는 이탈리아 출신 주방장이 하얀 모자를 쓰고 나와 인사를 했다. 곧이어 각 테이블을 서브했던 웨이터들이 하얀 면 냅킨을 머리 높이 흔들며  ‘아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승객들도 냅킨을 마주 흔들어 ‘ 땡큐’로 화답하며 아쉬움을 나눴다.  
 
3년 동안의 팬데믹를 피해 바다로 나온 승객들과, 다시 불러 주기를 매일매일 기다렸다던 크루즈 승무원들이 함께한 7일간의 크루즈 일정은 훈훈한 힐링의 시간이었다. 

김찬옥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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