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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침의 코러스

아침 8시, 찰스네 아이들이 또 짓기 시작한다.  송아지만 한 래브라도 리트리버, 국적이 아리송한 금발의 중형 누렁이와 작지만 제일 극성맞은 슈나우저의 합창이다.  
 
이곳 E 시의 교외 단지로 이사 온 지 일주일, 아침마다 8시가 되면 건너편 아래층 발코니에서 코러스가 시작된다. 30분이 지나 주인 찰스가 애들을 데리고 나가면 조용해지는데 강아지 산책을 8시에 시작하던가 꼭 8시 30분에 맞춰서 나가야 할 사정이 있다면 그때까지 집안에 가두어 두어야 할 것이다.
 
관리사무실에 전화로 항의했다. 애들이 짓는 시간을 듣더니 취침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못 한다는 대답이다. 난 그 시간이면 집안 창문을 모두 열고 아침 청소를 하는데 저 삼중창을 매일 정확히 30분씩 들어야 할까. 소리도 제각각이다. 웍웍, 왕왕왕 큰애들이 선창하면 한 옥타브쯤 높게 슈나우저가 아악 아악 내지른다. 저들 족속에게 유별난 애정을 가진 내 성향을 부정할 수 없지만 저런 아카펠라 불협화음은 쓰리 테너가 부른다 해도 못 들어 준다.
 
생각 끝에 직접 해결해 보기로 했다. 옷을 잘 차려입고 애들이 한창 악을 쓰고 있는 일 층 발코니로 내려갔다. 영감이 얼굴을 내민다. “애들한테 무슨 문제 있니?”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아니, 아무 문제 없어. 그냥 흥분해서 그러는 거야. 넌 개 안 키우니? 여긴 집집이 거의 다 개가 있어.”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라는 소리다.
 
“그래? 난 애들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줄 알았어. 내 친구가 유명한 수의사인데 소개해 줄까 했지.” 내 또래에 아직 은퇴 안 한 수의사가 있을까 싶었지만 기왕에 빼 든 칼이다. 10분가량 너스레를 떨고 애들한테 손까지 흔들며 돌아 나오는데 혹시 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통수가 서늘했다.
 
다음 날 아침 8시, 대, 중, 소가 모두 조용하다. 얼핏 내려다보니 발코니에 아무도 없다. 30분이 지나자 아래층이 우렁수렁하더니 발코니에도 있는 출입문을 두고 앞쪽 현관문을 통해서 모두 나간다. 작전이 성공했구나 했는데 며칠 후부터 아래층 발코니는 산책하러 나가기 전 흥분한 아이들과 애들의 엉킨 목줄을 고르며 그들을 제지하는 영감의 한층 높아진 고함으로 상황은 전보다 더 나빠졌다.
 
얼마 후, 그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됐다. 영감의 부인은 의료 시설에 있었다. 정원이 있는 주택에서 살다가 부인의 병이 깊어지자 집을 처분하고 시설에서 가깝고 넓은 도그 파크가 있는 우리 단지로 이사 왔다고 했다. 큰 애들은 태어나서부터 영감이 기르던 애들이고 슈나우저는 재혼한 부인의 애견인데 부인을 하루라도 안 보면 못 견딘다고 한다. 새벽부터 병원에 가자고 조르는 슈나우저가 감당이 안 돼서 나가기 전에 잠시 발코니에 내어놓으면 그렇게 또 짓는 거란다. 8시30분에 단지 내에 있는 도그 파크에 가서 운동시키고 10시 면회 시간에 맞춰서 넷이서 매일 병원에 다녀온다고 한다.  
 
딱했다. 뜰에서 맘껏 뛰어놀던 아이들이 좁은 실내에 종일 갇혀 지내려니 얼마나 답답할까. 매기 생각이 났다. 매기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내게 와서 삼 년을 살다 간 페키니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녀석은 제 목줄을 물고 와서 산책하러 나가자고 졸라댔다. 세 번째 캄보디아 선교를 떠나게 되어서 짐을 싸던 날, 매기는 샐쭉해서 창고 방 가구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달래도 나오려 하지 않았다. 캐리어의 크기로 상당 기간 내가 집을 비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매기를 돌봐 줄 집안 동생이 와서 데리고 갔고  그 집을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전단지를 뿌리고 유기견 보호시설들도 훑었지만 매기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동생에게 안겨 집을 나서며 나를 보던 녀석의 원망 어린 눈망울이 잊히지 않는다.
 
저녁 무렵에 산책하면서 보니 도그 파크 안이 사람 반 멍멍이 반이다. 직장에서 돌아온 견주들이 애들을 운동시키려고 데리고 나온 것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는 애들은 신기하게도 짓지 않는다. 실내에서 종일 지내던 아이들은 파크 안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제 주인이 던지는 공을 눈여겨보다가 재빨리 달려가서 물어 오는 일을 반복한다.
 
울타리 밖으로 빨간 공 하나가 굴러 나왔다. 애들 두엇이 달려오더니 좁은 철책 사이로 코를 내밀며 공을 물려고 애쓴다. 손으로 공을 집어서 파크 안으로 던져주었다. 큰놈은 공이 날아가는 방향 따라 달려가는데 작은 녀석은 그 자리에서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는 체를 한다. 자세히 보니 찰스네 슈나우저다. 엄마와 풀 잔디 위를 달리며 놀던 때가 그리운 가엾은 슈나우저!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침의 코러스가 조금 다르게 들린다. 쓰리 테너와는 비할 수 없지만 쓰리 도그 앙상블도 크게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박 유니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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