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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불륜이지만서도

낙엽이 갈 곳을 찾아 바람에 나부끼며 떨어질 자리를 찾아 헤매듯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짧은 만남(Brief Encounter, 1974년)’ 영화를 봤다. 의사 알렉 하비(리처드 버턴)가 안나제손(소피아 로렌)이 기차 플랫폼에서 눈에 무언가 들어간 것을 꺼내주며 도와준다. 두 사람 모두 결혼해서 아이들이 있다. 한 번의 만남은 여러 번으로 이어지며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친구의 아파트에서 육체적 결합을 시도하려다 갑자기 친구가 일찍 귀가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 둘은 점점 불륜의 행각이 들킬까 봐 두려워하다가 아쉽게도 끝난다.  
 
내친김에 이미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를 다시 봤다. 남편과 두 아이가 잠시 집을 떠난 일상이 지루한 여자가 길을 잃은 사진작가와 만나 나흘간의 사랑을 나눈다. 남자는 여자에게 함께 마을을 떠나자고 한다. 결국 그는 혼자 떠난다. 여자는 남편과 함께 타고 가는 비 내리는 차창 밖으로 떠나는 그를 애처로운 아쉬움으로 쳐다본다. 그녀가 그에게 갈까 말까 차 문 핸들을 잡고 망설이던 장면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이왕 꼭지가 돈 김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 ‘그와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로 시작하는 자막이 미리 시작과 끝을 말해 주는, 양조위와 장만옥 주연인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2000)’를 또 봤다.  
 
홍콩의 비좁은 공간에서 말없이 부딪치는 남녀 그러나 어떤 신체 접촉도 보여주지 않고 음악만이 이들의 간절한 사랑을 대변한다. 정지된 순간 속의 외로운 남녀의 기다림과 스치는 장면들은 대도시의 한산한 공허감을 조용히 그려낸 화가 Edward hopper의 화폭 같다.  
 
비 내리는 초겨울, 나는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며 송골송골 유리창을 타고 내리는 창밖을 내다본다. 바닥에 뒹구는 빗물에 젖은 낙엽을 보며 화양연화 주제곡을 듣는다. 나도 모르게 리듬에 취해 고개를 떨군다.
 
세 영화 모두 이루어질 수 없는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로 기억에 진하게 남아 다시 찾아봤다. 사랑하는 이들의 애타는 행각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불륜임에도 너그러워진다. 사랑한다는데 어쩔 건가? 애타게 함께 하고 싶어 안달하는 그들을 오히려 나 같은 조강지처가 포기하고 떠나주는 쪽을 택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사랑하고 있는 감정을 사랑해서 끊임없이 상대를 찾아 방황하는 것이 아닐까? 결혼은 사랑보다는 의리, 약속, 책임감, 신뢰 그리고 동료 의식으로 산다. 조강지처는 남편의 변하지 않는 끊임없는 사랑의 기대를 접고 역경을 함께 이겨내고 참고 기다려서 차지하는 자리가 아닐까?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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