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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감사의 시간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건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 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풀꽃 시인으로 잘 알려진 나태주의 시 ‘11월’ 이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흘러 왔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 11월의 어정쩡한 시간을 이렇게 공감 있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11월은 떠나가는 가을이 아쉽고, 다가오는 겨울이 반갑게 느껴지는 달이다. 요 며칠 사이에 조석으론 벌써 쌀쌀한 겨울 추위가 맛보기로 느껴지는 듯하다.
 
시간과 계절은 서로 앞서거니 뒤따르거니 마냥 달려가더니 덜컹 2022년의 꽁무니가 저만치 보인다.
 
대자연의 신비와 섭리,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오랜 세월 북미 대륙에서 농사와 사냥으로 살아왔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시간과 계절을 아는 지혜가 있었다. 그들은 일 년 열두 달을  주변에 있는 풍경의 변화나 그들 마음의 느낌을 주제로 그 달(月)의 명칭을 정했다.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2월),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4월), ‘옥수수 수염이 나는 달’(6월), 등 계절의 변화를 정서적으로 표현한 달의 명칭이 2월, 4월, 6월 숫자 명칭보다 느낌이 훨씬 더 좋다.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주 지역에 살았던 푸에블로족은 11월을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 이라 불렀다. 그들은 옥수수와 콩 농사의 추수를 거두어들이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신께 감사하는 달이 바로 11월이었다. 미네소타주의 아칸소강을 따라 살았던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이라 불렀다. 낙엽이 수북이 쌓이고, 첫눈이 온 땅을 덮어 만물이 감추어졌어도 모든 것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콜로라도 로키산맥에 거주했던 키오와족은 둥근 달이 뜬 밤하늘에 겨울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걸 보며, 11월은 ‘기러기가 날아가는 달’ 이라 불렀다.  
 
우리의 달 이름에도 11월을 ‘미틈달’, 12월은 ‘매듭달’, 다음 해 1월은 ‘해오름달’ 이라 부른다.  미틈달은 ‘가을을 밀쳐내고 겨울로 치닫는 달’ 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한 해의 힘든 농사와 추수를 마치고, 빨리 겨울 농한기를 맞아 쉬고 싶었던 우리 조상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명칭이다.
 
미국의 11월은 ‘감사의 달’ 이다. 영국인 청교도 102명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60여일의 항해 끝에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에 닻을 내린 때는 1620년 11월 21일이었다. 긴 항해, 질병, 열악한 환경, 혹독한 추위로 이미 절반이 사망했으나, 주위에 거주했던 원주민 왐파노아그족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이 이웃 원주민이 전해 준 씨앗과 곡물, 농사법을 배워 눈물로 씨를 뿌리고 열심히 일해서 1621년 11월, 기쁨으로 첫 농사를 추수하고, 이웃의 왐파노아그족을 초대하여 감격적인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때의 감격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질했지만....
 
감사절은 구약성서에 “초막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은 기원전부터 토지의 소산을 추수하여 저장한 후, 7일 동안 감사제를 자손 대대로 지켜 온 것이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감사하는 삶’과 ‘감사하지 않는 삶’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이분법 문제가 아니라, 삶의 목적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도 낯선 타국에 이민 와서 언어장벽, 문화 차이, 환경적응, 경제문제, 인종차별, 세대간의 갈등 등 생존의 고통들이 눈물겹게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은혜요, 축복이요, 감사할 조건들이 많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 11월을 감사로 채우면 어떨까!

이보영 /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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