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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허술한 독립운동 서훈 심사

안중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겨누었던 담대하고 흔들림이 없는 청년의 의기는 지금도 퍼렇게 가슴에서 엉긴다. 그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저려오는 안중근 의사의 거사. 하지만 사람들은 뤼순감옥에서 돌아가신 안중근 의사의 죽음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그와 함께 거사를 꾀했던 우덕순이 나중에 동족을 팔아먹는 밀정으로 활약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3·1운동으로 당황했던 일본은 다급하게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통치방법을 바꿔야 했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위장일 뿐이었다.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고안했다. 일본은 독립운동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많은 조선인을 포섭했다. 일본에 협조한 변절자, 우리는 그들을 ‘밀정’이라고 부른다.
 
밀정은 독버섯처럼 독립운동의 그늘에 기생하며 자신의 안위를 채우고 부를 축적했다. 그들 중 하나가 안중근과 같이 거사를 도모했던 우덕순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완용도 처음에는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만민공동회를 열어 조선의 자주독립을 부르짖었다. 그도 결국 일본의 회유에 넘어가 조선을 일본에 넘기는 매국의 일에 가담하게 된다.
 
일본의 회유, 귀순증이 그것이다. 일본군에 귀순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귀순증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밀정의 시작이다. 밀정을 처단하던 임무를 수행하던 한 독립운동가가 일본군 19사단에 귀순을 하게 된다. 어떤 정보를 제공했는지, 장성순의 귀순으로 그의 조직이 일본경찰에게 일망타진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귀순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고 말았다. 장성순의 가족들이 나섰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귀순증 받았는데 경찰에게 잡혀 죽게 됐노라고.
 


이해는 한다. 독립의 기미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깜깜했을 테니 조여오는 일본경찰의 감시와 겁박을 견디긴 어려웠으리라.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공적에 대한 서훈심사는 별도의 문제다.
 
해방이 되고 드러나지 않은 배신의 행적을 감춘 이들이 표면에 나섰다. 자신도 독립운동을 했노라고. 하지만 밀정의 명단은 일본 군 내부기밀보고서에 고스란히 있었다. 그렇게 밝혀진 일본에 협조한 자가 859명이라니. 또한 건국훈장을 받은 자들 가운데 친일행적으로 드러난 사람들이 167명이라고 한다. 오래전 기록이니 지금은 그 명단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건국훈장은 말 그대로 국가의 초석을 세운 공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훈장이다.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나중에 친일을 한 사람은 서훈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이다. 훗날 친일의 행적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하는데 KBS가 최근 방송한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집 방송에 따르면 2016년의 보훈처 심사위원 23명이 전직 공무원, 법학자, 정치학자 등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역사를 전공한 위원들은 해촉이 되어서 그런가, 흠결이 있는 자가 건국훈장을 받아도 묵인하고 있다.
 
변절자의 후손이 지조를 지키고 목숨을 걸었던 순국선열의 명예를 높여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 행동을 지켜보고도 침묵하는 광복회 회원들은 무엇에 동조하는 침묵인지 묻고 싶다.

권소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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