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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사과를 하라니!

종종 병동에서 환자들이 치고받고 싸운다. 보조간호사들이 덤벼들어 뜯어말린다. 아직 감정의 앙금이 가시지 않은 둘을 인터뷰한다. 누가 먼저 때렸냐?  
 
- “Who started it?”
 
이 질문은 병동환자들, 정치인들이 늘 신경을 곤두세우는 부분이다. 둘은 평소에 서로 감정이 좋지 않은 관계다. 한쪽은 감성적이고 다른 쪽은 이론에 밝지만 화제를 바꿔가며 상대를 몰아붙이는 능력이 딸린다. 사태의 발단은 얌전한 이론파보다 대체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사나운 감성파에 있다.  
 
-“HE did!”
 


사과(謝過)받기를 좋아하는 감성파가 이론파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이론파는 사과를 할 이유가 없지만 반대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사과의 뜻이 담긴 미약한 발언을 한다. 사과의 진정성이 이슈가 된다.
 
급기야 감성파는 사죄하라고 위협한다. 거창한 저주를 퍼붓는다. 이론파는 꿈지럭거린다. 보통사람은 이론파가 무슨 큰 죄를 저질렀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론파 환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는 조그만 목소리로 말한다.  
 
- “I am sorry!”
 
사례할 사(謝)에 지날 과(過). 사과(謝過)라는 한자어는 매우 묘한 말이다. 얼른 해석하면 ‘지난 일을 사례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謝에 ‘잘못을 빈다’는 뜻이 있고 過에 ‘재앙’이라는 뜻도 있으니까 결국 지난 재앙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엄청난 의미가 ‘사과’다.
 
당신은 공식적인 연설을 마친 후 ‘고맙습니다’ 하는 순수한 우리말을 쓰는 대신 ‘감사(感謝)합니다!’ 하며 엄숙하게 말한다. 이때 感謝와 謝過는 분명히 일맥상통한다. 두 경우 다 자신의 톤(tone)을 낮추는 태도. ‘tone down’, 하면 음성을 낮추거나 색상을 부드럽게 한다는 뜻. 시쳇말로 꼬리를 내리는 태도다. 감성파는 이론파에게 바로 이것을 강요하고 있다.
 
‘사과’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가 있다. ‘apologize!’ ‘I am sorry’ 대신 이 말을 크고 낭랑하게 하면 주는 것 없이 폼이 난다. 명사형 ‘apology(사과)’는 15세기 초 라틴어로 ‘변명’이라는 뜻이었다. 상대의 용서를 구하기보다 자신을 정당화시키거나 핑계를 대는 뉘앙스가 넘친다. 사실 ‘apology’는 좀 건방진 말이다. 동사형 ‘apologize’가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변한 것은 300년 후 18세기 초엽이었다.
 
고대영어 ‘sorry’는 전혀 다른 사연이다. 목이나 근육이 아프다는 뜻의 ‘sore’와 ‘sorrow(슬픔)’과 말뿌리가 같은 ‘sorry’에는 자발적 슬픔이 깔려 있다. 당신은 상(喪)을 당한 미국인 친구에게 ‘I am sorry(미안해요)’라고 속삭인다. 일상용어로 사용되는 ‘I am sorry’는 아닐 未, 편안 安, 즉 미흡하고 불안한 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정호승의 시, ‘미안하다’  (2005) 전문을 소개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니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정호승이 ‘미안하다’ 대신 ‘사과한다’고 읊조리는 상상을 해보라. 문법적으로 걸맞게 ‘널 사랑하는 걸 사과한다’ 해보라. 바로 다음 날 한 감성파 언론사가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며 들입다 소란을 떨지 않을 것인가. 뭐, 아니라고? 아니면 말고!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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