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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저 불빛들을 기억해

 대학 은사의 퇴임식에서 들었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정현종 선생님의 퇴임사는 시인의 마지막 인사답게 담박하고 여운이 있었다. 선생은 십여분 정도 말씀을 이어가다가 갑자기 “자, 그만합시다. 실은 세상의 모든 말은 하다가 마는 겁니다”라고 끝을 맺으셨다. 그 중단된 말에 깃들어 있는 침묵이 오히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하다 만 말, 피우다 만 꽃, 타오르다 만 사랑, 듣다가 만 음악… 세상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못다 채워진 존재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선생이 가르치다 만 제자로서 나는 스승의 하다 만 말을 지금도 되새김질하고 있다.
 
나희덕 『저 불빛들을 기억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삶이 흔들린다. 일상은 마비되고, 사람들은 마스크라는 방호벽으로 서로 경계벽을 쌓는다. 언제 바이러스가 나를 덮칠지 모른다는 공포가 매 순간 삶을 조여온다. 마치 할리우드 재난영화 같은 장면이 TV 뉴스에 연일 펼쳐진다. 이럴 때 과연 어떤 말이, 문장이 소용 있나.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편, 입을 다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시인 나희덕이 에세이집을 펴냈다. 인용한 문장은 ‘못다 핀 꽃 한 송이’처럼 못다 채워진 존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지만, 요즘처럼 말문이 턱 막히는 세상에도 되새겨볼 만 하다. 거대한 고통이나 혼돈 앞에서 사람은 할 말을 잊는다. 당연했던 일상이 흔들리면서, 당연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신이 얼마나 작고 무력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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