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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원조 할머니

요즈음 한국 젊은이들은 참 자유롭다. 그들의 다양한 언어만 해도 그것을 제대로 다 알아듣는 어른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분명히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젊은 세대의 언어는 그들이 깡그리 새로 지어낸 말, 또는 함축된 말, 외국어의 변형어, 게다가 예전부터 있던 말이지만 별로 안 쓰다가 요즈음 새로 각광을 받고 유행어처럼 즐겨 쓰이는 말들이 눈에 뜨인다. 그중 하나가 내게는 원조 라는 말이다. 그 예를 스마트폰에서 찾아보니 원조 국밥 집, 원조 삼겹살, 원조 갈비탕 등 식당뿐만 아니라 IT 원조 안철수 등 사람 이름 앞에도 겁없이 붙어 다닌다.
 
때로 나는 별로 즐겨 쓰고 싶지 않는 단어를 꺼내어 나 자신을 소개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저는 사대째 되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하는 말이다. 결코 내가 이 말을 부끄럽게 여겨서가 아니다. 마치 이 말이 내가 남들에게 무슨 천당에 벼슬자리를 가지고 태어난 인물이라는 인상을 줄까봐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나는 내가 어떻게 날 때부터 모태 신앙인이라는 귀중한 호칭을 받게 되었는지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고, 그래서 우리 원조 할머니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오래전 나의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일이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아주 놀랍고도 중요한 우리 가문의 역사적 사건 하나를 내게 말 해 주셨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 외할머니 자신의 시어머니, 다시 말하자면 우리 증조할머니에 대한 얘기이다. 나의 할머니가 시집와서 첫 번째 되는 어느 주일날 나의 증조모 할머니께서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얘, 큰 애기야. 이제 그만 일손을 놓고 방에 들어가서 네가 시집올 때 가져온 옷 중에 제일 반반한 옷을 입고 나와서 나를 따라오거라.” 그때 내 외할머니가 증조할머니를 따라간 곳은 동대문 안에 있는 한 미국 여자 선교사의 거처였다고 한다. 그 미국인 선교사는 우리 증조할머니의 고질적인 눈병을 치료해 주었는데 미국인 선교사가 준 서양약을 눈에 바르니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던 안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하셨다. 그와 함께 선교사로부터 전해 받은 예수교를 우리 증조할머니가 내 외할머니께로 그리고 우리 어머니와 나, 온 가족에게 대대로 전파하여 오늘날 이렇게 큰 우리 믿음의 가문을 이루고 복된 삶을 살고 있기에 누가 뭐래도 우리 증조할머니는 분명히 우리의 믿음의 원조 할머니라고 생각된다.  
 
내 어린시절 우리 집안식구는 이른 아침마다 할머니가 드르륵 하며 사랑방-마루 문 여시는 소리와 함께 잠이 깬다. 우리 외할머니께서 사랑방에 들어가서 홀로 기도하시는 새벽 네시 반은 시계처럼 일정하다. 그 차디찬 온돌방 바닥에 할머니는 네모난 녹색 방석을 깔고 앉거나 엎드려서 한시간동안 하나님과 소위 독대기도를 하시는 것이 매일 할머니의 일과다. 그뿐인가, 시집오실 때 언문만 겨우 깨우치셨다는 할머님이 그분의 언문 실력을 한껏 활용해서 매일 또박또박 성경 몇 장씩 낭독하셨으며, 어떤 사람이든지 없는 사람이 집에 오면 당신이 가진 것을 선선히 나누는 후한 인심의 주인공이셨다. 그분은 믿음을 후손들에게 많은 말로 전하지 못하셨어도 그의 삶은 오늘날 우리 가족을 열심당원 예수쟁이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어느 훗날 나 역시 이 세상에서 주어진 삶을 끝내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기필코 내가 만나보고 싶은 두 분의 할머니, 외할머니와 이름도 모르고 모습도 모르는 우리 원조 할머니를 거기서 찾아 만나 뵐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지금도 마음이 설렌다.



황진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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