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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가을 맞이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저녁으로 서늘하다. 우리 집 벽장에도 여름옷들은 뒤쪽으로 물러가고 가을, 겨울옷들이 얼굴을 내밀고 앞으로 나와 있다.
 
우리 집은 방이 세 개인데 2층은 남편과 내가 쓰는 안방이고 계단 3개를 올라가면 3층에 작은 방 두 개가 나란히 있다. 방 하나는 손님방으로 침대와 스탠드만 있고 옆방에는 두 개의 침대와 그 외 많은 물건이 즐비했다.  침대 하나는 더블로 15년 전 내가 손녀를 키우려 미국에 다닐 때 쓰던 것이고 하나는 우리 손주들이 쓰던 아기 침대다. 코로나 이전에는 손자가 셋인 아들 식구가 오면 좁아도 요긴하게 다 사용하였다. 이제는 손자들도 다 커서 아기 침대는 내놓아야 했는데 무엇을 버리지 못한 내 습관때문에  우리는 아기 침대 위에 화장지 더미나 키친타월 등을 올려놓고 사용하였다.  
 
작은 방에 침대가 두 개니 별로 공간이 없었다. 거기에 10여 년 전 한국을 떠나올 때 줄이고 줄여서 가져온 물건들로 가득했다. 그중에서 골라 철 따라 벽에 그림도 바꿔 걸며  30여년 전에 찍었던 가족사진도 벽에 걸었다. 겨울이면 육촌 동생이 수놓은 6쪽짜리 자수 병풍도 치고 벽장에 넣어두면 잘 보이지 않아  가방들도 철 따라 꺼내어 나란히 아기 침대 위에 올려놓고 사용했다. 한쪽으론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림 도구도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그 방은 남이 보면 창고이고 나에겐 모두가 사연이 담긴 소중하고 의미 있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나는 가끔 그 방에 들어가 이것저것을 뒤적이곤 했다.  앨범을 보며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래전 내가 그린 그림에서 잘잘못을 찾아내고, 내가 써놓은 일기장들을 뒤적이며 그때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거의 읽은 책들이지만 다시 한번 더 읽으며 옛날에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곤 하였다. 결혼 50주년 때도 믿기지 않은 우리 부부의 칠순, 팔순 때도 그 방에 앉아 희노애락의 지난날을 회상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마치 농부가 가을에 수확한 곡물들을 곡간에 채워두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마음이랄까? 부자가 된 마음이었다. 그런데 올여름 너무 더워 그 곡간에 위기가 왔다. 샌디에이고에 사는 둘째 딸과 사위가 정기적으로 우리 집을 방문해 주는데 이번 여름에는 너무 더워  방 하나를 더 쓰고 싶어하였다. 서향으로 향한 방이고 지붕 바로 아래 방이니  여름 더위에는 에어컨도 능사가 못되었다. 그전에도 몇 번 필요 없는 아기침대, 옷, 책들을 정리하면 방 하나가 더 생길 텐데 왜 그렇게 못 버리냐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 방을 정리하면 내가 살아온 자취들이 없어질 것만 같아 귀담아듣지 않았다.  물건들로 방은 가득 찼지만 우린 질서 있게 배치해 두었으므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식이 거듭 한 말을 건성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옛 성현의 말씀인 여자의 삼종지덕이 생각났다. 어려서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결혼해서는 남편의 말을 듣고 늙어서는 자식의 말을 따르라는 가르침이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의 막바지에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프지만 손녀가 쓰던 침대를 길가에 내놓았다.  머릿장과 매트는 누가 금방 가져갔다. 이제는 우리가 사는 시의 법이 바뀌어 가구를 내놓으면 벌금을 문다고 하였다. 돈을 주고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필요한 사람을 찾아보자고 하였지만 결단력이 빠른 남편은 침대를 분해해서 재활용 통에 버렸다. 아직은 입을 수 있는 옷들을 굿일(Good Will)에 갖다 주고 손주들이 내놓았던 어린이 도서와 장난감 등을 깨끗이 정리하여 어린아이 둘이 있는 딸 후배 집에 보냈다. 멀쩡한 방을 정리한다고  화를 내던 남편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치우다 보니 딸 말대로 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들도 많이 나왔다. 우리 부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수 없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80고령에도 무거운 짐들을 순식간에 옮기고 버려준 남편의 행동에 다시 한번 놀랐고 젊은 날의 남편을 본 듯 든든했다.  화장지나 키친타월 등의 큰 덩치도 벽장 안으로 헐렁하게 넣을 수 있었다. 방 하나만이 아니라 온 집을 정리하게 되었다. 정리하는데 5일 정도 걸렸다. 옛말에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하였는데 자식 말을 들으니 침대와 책장과 의자만 있는 단정한 또 하나의 근사한 방이 생겼다.  
 
며칠 전에 두 딸 가족이 왔다. 짐들로 가득 찬 방이 깨끗이 정리된 것을 보고 모두 놀라워했다. 그리고 수고했다고 칭찬도 하며 자기들이 하려고 했는데 우리를 힘들게 했다고 하였다. 자식 말을 따라 준 우리도 한편 홀가분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그 방이 낯설다. 깨끗하게 치워진 그 방이 나에겐 익숙지가 않다. 저녁에 씻으러 갈 때도 그 방을 들여다보면 왠지 썰렁하다. 일부러 들어가 의자에 앉아 보지만 금방 일어선다. 아직도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에 얽매어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천재 시인 윤동주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하고 읊은 시가 있다.  중간쯤에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이 구절에는 비교적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물어온 질문들, 사람들을 사랑했느냐, 상처 준 일이 없느냐, 삶이 아름다웠느냐, 어떤 열매를 얼마나 맺었느냐, 이런 질문에는 대답이 잘 나오질 않는다. 이제 나는 내 인생의 가을에 와 있다. 이제 지나간 일들은 잊고 못다 한 일들을 하기 위해 매진해도 늦은 나이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노년에 지켜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힘을 기르라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앞으론 깨끗이 치워진 그 방에 앉아 조금은 늦은 감이 들지만 내 인생에 진짜 가을이 오는 날을 위해 시간을 내어야겠다. 윤동주 시의 맨 마지막 구절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가겠습니다’처럼 노력할 것이다. 그러려면 습관이 되어버린 모든 말과 행동과 싸워야 할 것 같다. 그 싸움에 지지 않고 보기 좋은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야겠다. 내 인생에 겨울이 오기 전에.    

이영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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