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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엄마의 꿈 아들의 꿈

이기희

이기희

우리집 피아노는 장식용이다. 치는 사람 없어도 자식 머리 쓰다듬듯 매 주 먼지를 닦는다. 강남 엄마는 세계 어디서나 존재한다. 미국에서도 몰아치던 강남엄마 붐 타고 애들이 어릴 적에 피아노를 장만했다. 레슨을 받는데 애들은 죽도록 연습을 안 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는 교육 이념 아래 전인교육(全人敎育)시킨다는 명목으로 태권도 발레 바이올린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다. 전인 교육은 지식 전달의 학술 교육 중심에서 탈피해 지(知), 덕(德), 체(體)의 균형 잡힌 발달을 지향해 ‘올바른 사람으로 길러주는’ 교육을 말한다.  
 
연습 안 하면 레슨은 무용지물이다. 악착스럽지 못한 내 탓도 있지만 보초를 서도 딴짓거리 하는 막내 아들은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래도 이빨 악 물고 레슨을 계속했다. 유명한 피이니스트나 바이올린 연주자, 발레리나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골치 아픈 공부에 시달리고 삶이 지치고 힘들 때면, 감미로운 음악으로 위로 받고, 혹독한 연습으로 피맺힌 발을 핑크빛 수즈에 감추고 하늘을 나는 발레리나의 꿈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얼마 만인가. 살아있는 생명의 울림으로 내 영혼의 문을 열고 뜨거운 눈물로 번지는 감동의 선율! 세계적 권위의 피아노 경연대회인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올해 금메달을 따낸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듣는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피아니스트의 무덤’ ‘악마의 협주곡’이라 불릴만큼 광기에 가까운 음악성과 고난이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임윤찬은 피아노를 손으로 치는 게 아니라 영혼으로 건반을 두드린다. 연주를 마치자 지휘대에 섰던 마린 올솝이 눈물을 흘렸다. 영혼은 국적 없이 서로 통한다.
 
늦둥이 막내 아들은 공부는 제쳐놓고 쓸데없는 연구에만 골몰했다. 어려서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멀쩡한 시계 뜯어 망가트리고 별의별 괴상한 아이디어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영재반인데 숙제 안 해 가고 까불다가 쫒겨났다. 고등학교 4학년 때 부랴부랴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중간치에서 돌연 급상승세를 탔다. 스펙도 전혀 안 쌓고 특기도 없는데 명문대에 합격한 것이 아직도 아리송한 미지수다. 파트타임 일자리 구해주면 NO, 영어 못해 심심하신 할머니하고 방과 후 놀아드리는 게 ‘스펙쌓기’라는 황당한 논술이 먹혀 들었나.
 
“아들아, 엄마가 네 IQ라면 인류를 위해 거대한 발명을 했을 거야.”라고 넌지시 달랜다. 화랑 손님 한 분이 데디컬 치료제를 발명해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받게 되서 병원을 건립했다. 눈치 챈 아들 왈 “꿈도 꾸지 마셔! 그럴 일은 절대 안 일어날 테니.”
 
병아리 같은 손잡고 장보러 갈 땐 “엄마 늙으면 한 달에 일 억씩 용돈으로 줄 거야”라고 약속했다. 우리집은 매달 할머니께 용돈을 드린다. “일 억은 너무 많고…’했더니 싹뚝 잘라 “그럼 천만원씩 줄께”했다. 나이 들면서 점점 액수가 줄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결혼 하면 아내에게 물어봐야 될 거야” 하더니 여태 감감 무소식이다.  
 
내 꿈은 내가 키운 나의 꿈이다. 자식은 자식의 꿈을 꾼다. 그 꿈이 평행선으로 달린다 해도 자식이 행복해지면 내 꿈은 이뤄진 셈이다. 생명공학 전공해서 그 분야의 우수한 직장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결혼해 남편 아빠 노릇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내 꿈은 헛된 똥꿈’이였다. 근데 똥꿈은 횡재꿈이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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