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의 '노란버스' 절망을 희망으로…이현우 선교사 인터뷰
절망 가득한 아이티 땅 위해 한 알의 밀알 되기로 결심
선교 도중 갱단에 납치되기도 '죽으면 죽으리라' 마음먹어
미국서 스쿨 버스 두 대 구입, 의료 사역 위해 버스 개조해
선교 사역을 마치고 나오던 길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총구를 머리에 겨눴다.
이현우 선교사는 아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죽으면 죽으리라".
평소 선교 현장에서의 죽음을 선교사의 숙명으로 여기고 있었다. 오히려 죽음과 마주한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더니 평온해졌다.
이 선교사는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티 갱단 한인 선교사 납치 사건의 당사자다.
당시 이 선교사를 포함한 5명의 사역자는 무려 '17일'간 감금돼있었다. 현실은 공포였지만 이 선교사는 그 시간이 오히려 하나님과 '그들'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 선교사는 "17일 동안 물만 먹고 금식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며 "두렵지는 않았다. 선교사에게 선교지에서의 죽음은 당연한 길 아닌가"라고 말했다.
아이티 갱단의 두목은 복면을 잘 벗지 않는다. 신분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 선교사의 기도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었다. 감금 생활 10여 일 즘 갱단 두목이 복면을 벗고 이 선교사의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이 선교사는 "그 두목이 갑자기 집 사람에게 가더니 '우리 엄마처럼 예쁘다'고 하더라"며 "아내가 그들의 마음을 토닥여줬다. 그때부터 그들과 대화하며 삶을 나누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석방 후 이 선교사 부부는 잠시 휴식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납치 사건을 조사했던 연방수사국(FBI)은 이 선교사 부부에게 아이티 복귀를 만류했다. 그러나 아이티 땅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곳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선교사 부부는 한 달 만에 다시 아이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선교사는 "선교 사역은 내 삶에서 숙명과 같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라며 "그 땅은 질병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다. 하루에 한끼도 못 먹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요즘 아이티에서 노란 버스 두 대로 의료 사역을 진행중이다. 팬데믹 사태 때 미국에서 스쿨 버스 두 대를 구입해 의료 선교를 위한 차량으로 개조했다. 지금은 아이티 현지인 사역자 5명과 함께 노란 버스를 타고 100여 개 마을을 대상으로 순회 진료를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을 정도로 어디를 가나 극빈 지역"이라며 "한번은 한 임신부가 배 속의 아이가 죽었는데도 병원을 갈 수가 없어 그대로 지내는 모습도 봤다. 그런 땅을 위해 나 같은 선교사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아이티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 요청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니세프 역시 유엔에 아이티에 대한 지원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국제사회의 원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아이티 땅 이면의 아픔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티에는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아픔이 있는데 아직도 15세 미만의 노예가 25~30만 명 정도 있다"며 "그 아이들은 하루종일 노동착취에 시달리며 시멘트 바닥에서 하루 한끼만 먹으며 혹독한 삶을 보내고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현실을 알고 함께 기도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아이티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지난 5월 최동인 프로듀서(N마당)를 통해 선교 사역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영상은 온라인 기부 사이트 '고펀드미( gofundme.com)'에서 'Save this YELLOW BUS in Haiti'를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이 선교사는 1950년 생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에 태어났다. 당시 아이티는 한국에 2500달러를 지원했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이 선교사는 아이티 땅을 살리기 위해 한 알의 밀알로 심어졌다.
그에게 왜 '아이티'를 사역지로 결정했는지 물었다.
이 선교사는 "그동안 50여 개 국을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해왔는데 아이티만큼은 어떠한 답도 찾을 수 없었다"며 "그만큼 절망이 가득한 땅이었다. 그곳을 위해 남은 삶을 헌신해야겠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 버스에 시동을 걸 때마다 아이티 땅의 절망은 희망으로 변하고 있다.
▶선교 지원 문의: (443) 800-1755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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