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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노란버스' 절망을 희망으로…이현우 선교사 인터뷰

절망 가득한 아이티 땅 위해 한 알의 밀알 되기로 결심
선교 도중 갱단에 납치되기도 '죽으면 죽으리라' 마음먹어
미국서 스쿨 버스 두 대 구입, 의료 사역 위해 버스 개조해

이현우 선교사가 의료 선교를 위해 개조한 버스 안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이현우 선교사가 의료 선교를 위해 개조한 버스 안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카리브해 극빈국 아이티(Haiti)는 절망만이 가득한 땅이다. 아이티커넬선교회 이현우 선교사(72)는 그곳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고 자처했다. 한의사인 이 선교사는 '노란 버스'를 타고 아이티 곳곳을 누빈다. 한 손엔 성경 다른 한 손엔 침술 가방을 들고 아이티 주민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있다. LA를 방문한 이 선교사와 지난 13일 인터뷰를 했다. 그에게 밀알의 의미를 물었다.
 
선교 사역을 마치고 나오던 길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총구를 머리에 겨눴다.

이현우 선교사는 아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죽으면 죽으리라".



평소 선교 현장에서의 죽음을 선교사의 숙명으로 여기고 있었다. 오히려 죽음과 마주한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더니 평온해졌다.

이 선교사는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티 갱단 한인 선교사 납치 사건의 당사자다.

당시 이 선교사를 포함한 5명의 사역자는 무려 '17일'간 감금돼있었다. 현실은 공포였지만 이 선교사는 그 시간이 오히려 하나님과 '그들'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 선교사는 "17일 동안 물만 먹고 금식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며 "두렵지는 않았다. 선교사에게 선교지에서의 죽음은 당연한 길 아닌가"라고 말했다.

아이티 갱단의 두목은 복면을 잘 벗지 않는다. 신분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 선교사의 기도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었다. 감금 생활 10여 일 즘 갱단 두목이 복면을 벗고 이 선교사의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이 선교사는 "그 두목이 갑자기 집 사람에게 가더니 '우리 엄마처럼 예쁘다'고 하더라"며 "아내가 그들의 마음을 토닥여줬다. 그때부터 그들과 대화하며 삶을 나누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석방 후 이 선교사 부부는 잠시 휴식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납치 사건을 조사했던 연방수사국(FBI)은 이 선교사 부부에게 아이티 복귀를 만류했다. 그러나 아이티 땅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곳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선교사 부부는 한 달 만에 다시 아이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선교사는 "선교 사역은 내 삶에서 숙명과 같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라며 "그 땅은 질병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다. 하루에 한끼도 못 먹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요즘 아이티에서 노란 버스 두 대로 의료 사역을 진행중이다. 팬데믹 사태 때 미국에서 스쿨 버스 두 대를 구입해 의료 선교를 위한 차량으로 개조했다. 지금은 아이티 현지인 사역자 5명과 함께 노란 버스를 타고 100여 개 마을을 대상으로 순회 진료를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아이티 주민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버스에서 기다리는 모습

아이티 주민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버스에서 기다리는 모습

 
순회 진료를 위해 아이티 한 마을에 도착한 노란버스의 모습

순회 진료를 위해 아이티 한 마을에 도착한 노란버스의 모습

수많은 마을을 다니다 보니 아이티 구석구석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이 선교사는 아이티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뭄이 심해 농사도 힘들고 문맹률도 높다. 성병이 만연하고 생활의 기반을 형성하는 인프라가 전혀 구축돼있지 않은 나라다. 지난 2010년 대지진은 물론 무정부 상태의 장기화 치안 악화 각종 시위 격화 등으로 혼란이 가중하면서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이 선교사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을 정도로 어디를 가나 극빈 지역"이라며 "한번은 한 임신부가 배 속의 아이가 죽었는데도 병원을 갈 수가 없어 그대로 지내는 모습도 봤다. 그런 땅을 위해 나 같은 선교사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아이티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 요청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니세프 역시 유엔에 아이티에 대한 지원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국제사회의 원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아이티 땅 이면의 아픔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티에는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아픔이 있는데 아직도 15세 미만의 노예가 25~30만 명 정도 있다"며 "그 아이들은 하루종일 노동착취에 시달리며 시멘트 바닥에서 하루 한끼만 먹으며 혹독한 삶을 보내고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현실을 알고 함께 기도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아이티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지난 5월 최동인 프로듀서(N마당)를 통해 선교 사역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영상은 온라인 기부 사이트 '고펀드미( gofundme.com)'에서 'Save this YELLOW BUS in Haiti'를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이 선교사는 1950년 생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에 태어났다. 당시 아이티는 한국에 2500달러를 지원했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이 선교사는 아이티 땅을 살리기 위해 한 알의 밀알로 심어졌다.

그에게 왜 '아이티'를 사역지로 결정했는지 물었다.

이 선교사는 "그동안 50여 개 국을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해왔는데 아이티만큼은 어떠한 답도 찾을 수 없었다"며 "그만큼 절망이 가득한 땅이었다. 그곳을 위해 남은 삶을 헌신해야겠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 버스에 시동을 걸 때마다 아이티 땅의 절망은 희망으로 변하고 있다.

 
▶선교 지원 문의: (443) 800-1755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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