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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두번째 웨딩

얼마 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행사에서 지난 달 사망한 하원의원을 호명하며 “어디 있소?”라며 찾았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요즘 남편과 나는 물건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뿐만 아니라 잘 아는 책 이름이나 음악, 미술 작품의 제목이 금방 안 떠올라 사람들에게 우리가 원래 그런 것도 모르는 무식쟁이로 여겨질까봐 걱정이다. 가까운 사람이나 누구나 아는 유명인의 이름도 기억 못했다가 엉뚱하게 한참 후에 생각이 나기도 한다. 하도 깜빡깜빡 건망증이 심하니 “우리 이러다가 치매에 걸려서 서로 몰라보게 되면 어쩌지?” 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한다.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건 치매나 알츠하이머에 걸려 감당하기 힘들면 죄책감 없이 병원에 입원시키기로 미리 약속까지 해 둔 상태다.  
 
알츠하이머 이야기가 나오니 지난 해 6월 워싱턴포스트지가 보도한 코네티컷주 앵도버에 거주하는 54세의 리사와 56세의 피터 마샬 부부가 두번째 결혼식을 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지난 2018년 조기 발생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남편 피터는 급속히 기억을 잃어버린 어느 날 TV속 결혼식 장면을 보고는 자신의 아내 리사에게 “우리도 결혼하자”고 깜짝 청혼을 했다는 것이다. 웨딩 플래너인 딸이 결혼식을 본격적으로 준비했고 두 사람은 마침내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다음 날 그녀의 남편은 전날 상황을 까맣게 잊었고, 그녀에게 한 첫번째 청혼도 두번째 청혼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중증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남편이 자신의 아내와 다시 결혼한 사연이 전해지며 미국 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줬다.    
 
한 여자에게 두 번 청혼해서 두 번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오래 전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떠올랐다. ‘마음의 행로’라는 영화인데 우리나라 관객에게 오랜 기간 수차례 개봉을 하며 꾸준히 사랑을 받은 고전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영국, 외딴 곳에 위치한 정신병원에 수감된 젊은 남자는 전쟁 중 부상의 후유증으로 자신의 이름과 가족상황 등 자신과 관련된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언어 장애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전 소식을 듣는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거리로 뛰쳐나오고 시가지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그 혼란한 틈을 타서 그는 슬며시 정신병원을 빠져나온다. 얼떨결에 담배 가게에 들어 갔는데 그곳에서 폴라라는 여인을 만난다.  폴라는 자신의 일도 포기한 채 그를 헌신적으로 돕는다. 그들은 한적한 시골로 가서 결혼을 하고 아들도 낳고 신혼의 단꿈을 꾸며 산다.  남자는 작은 지방 신문에 기사를 기고하며 생계를 꾸려가지만 행복한 삶에 젖어 지낸다.    
 


얼마 후 신문사에 취업 면접을 보러 가던 중 교통사고 충격으로 뇌를 다치는 바람에 폴라와의 모든 기억들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폴라를 기억할 수 있는 단서는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열쇠 뿐이다. 대신 전에 잃어버렸던 과거의 기억을 회복한다. 그의 진짜 이름은 찰스이고 명문가의 상속자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사업가로 성공하지만 뭔가 늘 허전하다. 주머니에 남아 있는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지난 3년 간의 일을 기억해 보려 애쓰지만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한편 폴라는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에다 아이까지 잃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잡지에서 성공한 사업가이자 정치가가 된 찰스의 인터뷰 사진을 보고 신분을 감춘 채 그의 개인 비서로 취직한다. 폴라가 찰스 주변을 맴돌며 그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물 겹다. 찰스는 후에 국회의원이 되고 유능한 폴라의 보필이 필요해서 그녀와 두 번째 결혼을 하나 쇼윈도 부부일 뿐 애정은 없다.    
 
폴라는 아무리 애써도 자기를 몰라보는 찰스에게 낙심해서 둘이 행복하게 살던 시골의 옛집을 찾아간다. 찰스는 타 지역에 출장을 갔는데 초행 길임에도 어딘가 너무 익숙한 분위기다. 그는 종전 날의 혼란스러운 시가지 모습과 폴라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상기하며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다. 찰스가 폴라와 살던 집을 찾아가 열쇠구멍을 맞추면서 폴라와 포옹하는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가슴 뭉클하다.  
 
이 영화는 기억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말해 준다. 그렇게 중요한 기억을 잃어버리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 있다. 치매다. 치매는 성장기에는 정상적인 지적 수준을 유지하다가 후천적으로 인지 기능의 손상 및 인격의 변화가 발생하는 질환이라고 한다. 알츠하이머는 치매의 가장 흔한 형태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도 앓았던 병으로 치매의 약 50~70%는 알츠하이머라고 한다.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은 기억장애로 최근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집 근방에서 길을 잃고,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 등이 있다.  
 
재미 있는 것은 치매에는 예쁜 치매와 미운 치매가 있다고 한다. 평소 성격에 따라 예쁜 치매가 될 수 있고 미운 치매도 될 수 있다고 한다. 예쁜 치매는 순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데 반해 미운 치매는 남을 의심하고 거짓말도 하는 등 고약하게 행동하며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한다. 살아오면서 애써 참았던 일들이 교양이라는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면이 무분별하게 터져 나오는 것이 치매라고 한다. 조기에 발견하면 충분히 증상을 조절하여 진행을 늦출 수도 있고, 초기 단계에서 미리 예쁜 치매가 되도록 노력하면 미운 치매도 예쁜 치매로 바뀔 수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고령화 시대에 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지금 같아서는 우리 부부도 치매에 걸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난다.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겠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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