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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욕의 미학과 욕의 품격

김형재 사회부 부장

김형재 사회부 부장

중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리며 ‘욕’을 달고 살았다. 환경 영향도 컸다. 주변에서 화풀이할 때 자연스레 욕을 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욕의 의미를 모른 채 일상어로 받아들인 셈이다. 사춘기가 시작되고 주위의 ‘찰진 욕’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비속어의 본고장이라고 할 정도로 욕도 참 다양했다. 왜들 그리 욕지거리를 즐기는지 신기했을 정도.
 
중학교 2학년쯤 ‘욕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이유가 기억나진 않지만, 욕이 퍼트리는 분노의 감정이 그냥 싫었다. 사춘기 자의식은 당장 실천을 독촉했다. 쉽지 않았다. 이미 대화의 기술에서 욕은 일상어, 추임새가 된 지 오래였다. 머리는 ‘욕하지 마!’라고 채근하지만,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아무렇지 않은 듯 튀어나왔다. ‘경로의존’, 어릴 때부터 사춘기까지 10년 넘게 쌓인 욕의 내공은 정말 강했다.
 
방법을 고심했다. 자각의 힘과 반성을 택했다. 매일 일기장을 마무리할 때 ‘오늘은 욕을 0번 했다’고 적기 시작했다. 1년, 2년, 3년… 고등학교 2학년쯤 입에서 욕이 사라졌다.
 
한 번 사라진 욕의 효과는 대단했다. 육두문자를 입 밖에 내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고, 욕을 내뱉는 것이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회생활하며 불쑥 욕이 튀어나오면 여전히 반성하는 이유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욕의 기원’도 배웠다. 지금도 유행어처럼 쓰이는 ‘씹*다, 씨*, 니*씨*, *빠지다, *나(내)’ 등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민감한 신체 부위를 심하게 비하하는 표현이다. 욕은 국경도 없다. 영어권에서 쓰는 ‘F*ck, Mo**Fu*k*r’는 ‘씨*, 니*씨*’과 뜻이 거의 똑같다.
 
남에게 이런 욕을 한다면 말 그대로 최고 수위의 경멸과 분노를 퍼붓는 행태다. 이성은 잠식되고 본성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영국 인디펜던트 온라인 뉴스판 인디100(indy100)은 영국 사람이 가장(strongest) 불쾌하게 느끼는 욕으로 ‘F*ck, Mo**Fu*k*r’를 꼽았다.
 
욕의 미학이 학술적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현대사회 스트레스 해소를 꼽을 수 있다. 넷플릭스의 ‘욕의 품격’ 시리즈는 인지과학자, 언어학자, 영문학 박사 등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욕의 기원과 의미 변화를 짚는다. 시리즈 중 재미난 실험은 사람이 고통받을 때 욕을 하면 ‘진통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혼잣말로 욕을 내뱉는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사람 관계에서 욕은 친밀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절친한 사이 농담을 주고받듯 ‘개**,  Bi**h’를 남발하는 이유다.
 
다만 욕의 미학은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욕의 대상, 때와 장소를 가려 사용해야 욕의 미학이 공감을 얻는다. 특히 타인을 향한 욕지거리는 다르다. 이때 욕은 그저 일상의 ‘감탄사, 관용어’라는 항변도 통하지 않는다. 욕의 기원과 본래 뜻이 분명한 상황에서 기표(記表, 단어나 표현방식)와 기의(記意, 단어나 표현이 담은 뜻)를 재해석하긴 쉽지 않아서다. 일상에서 욕설(기표)을 아무 뜻 없는 감탄사처럼 내뱉었다 해도, 욕을 들은 타인은 욕의 의미(기의)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날 것 그대로의 ‘인성’이 드러나는 순간일 때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욕설이 대중에 공개돼 논란이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은 인간다운 모습보다 거만함이 앞섰다. 바이든 대통령의 ‘f*ck’은 욕이 몸에 배었음을 드러냈다. 인성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면, 욕의 품격을 배우고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각자 내뱉는 욕의 기원과 의미부터 곱씹어보자.

김형재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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