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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여행의 행복 지수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떠나는 일은 분명 여행의 진수일 것이다. 나이가 80을 넘으니 어디 가는 것도 조심스럽고 더구나 딸과 단둘이 차를 몰고 떠나는 것은 모험 같아 마음이 심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워낙 자연을 벗 삼아 4계절의 변화를 탐하는 딸의 지구력에 두손 들고 3박 4일 일정으로 우리는 미국 동북부 뉴욕주에 있는 레이크 플래시드(Lake placid)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뉴저지에서 5시간이나 걸리는 레이크 플래시드는 산, 푸른 언덕, 호수와 스키 코스로 이루어진 그림 같은 지형으로 미국에서는 1932년과 1980년 두 차례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플래시드 마을은 애디론댁 산맥과  레이크 플래시드 사이에 있는 데 집을 떠난 지 몇 시간 만에 이렇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니 요즘 같은 팬데믹시대에 더없는 힐링이 되는 듯했다. 레이크 플래시드의 명물인 미로 호수(Mirrow lake) 뒤로 펼쳐져 있는 산들의 조화에 마음을 빼앗기며 시원하게 펼쳐진 호숫가에서 그동안 쌓인 찌든 마음의 때를 벗기고 있었다. 레이크 플래시드의 올림픽센터에 들러 뮤지엄도 보고 올림픽 스키 점핑 콤플렉스도 돌아보았다.    
 
레이크 플래시드 메인 스트리트에서 차로 20여 분 안에 있는 화이트페이스 마운틴으로 향하는 길은 차로 거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미국에서 5번째로 높은(4867피트) 화이트페이스를 오르면서 푸른 하늘과 푸른 산, 밑으로 펼쳐져 있는 호수들을 보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실감하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꼈다. 산의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어디를 봐도 막힘이 없고 마음이 느긋해지면서 얼마 전 지인이 보내온 글이 떠올랐다.    
 
“자비존인(自卑尊人)”이라!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주면 다툼이 없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만찬에 중국 관리들을 초대했다. 그런데 당시로써는 서양식 식사를 해본 적 없는 중국인들은 핑거볼에 담긴 손 씻는 물이 나오자 차인 줄 알고 마셔버렸다. 그러자 여왕은 그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손 씻는 물에 손을 씻지 않고 같이 마셨습니다. 핑거볼에 손을 씻는 예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이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를 배려해 핑거볼의 물을 같이 마시는 마음이 바로 진정한 ‘예’입니다. 상대가 누구더라도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 주는 것입니다. 하여 맹자는 “공경하는 마음이 ‘예’이다”라고 하고 주자(朱子) 역시 “예는 공경과 겸손을 본질로 한다”고 했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하면 찬 연못에도 물결이 끊는 듯해 자연에 묻혀 살아도 고요함을 느끼지 못한다. 하나 마음이 비어 있는 사람은 폭염 속에서도 서늘한 기운이 생겨 더위를 모르고, 시장 한복판에 살아도 시끄러움을 모르는 법이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면 세상에 다툼이 없이 화평할 것이다. 자신을 낮추면 높아질 것이요, 자신을 높이면 낮아질 것이라 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들로 많이 행복했다. 레이크 플래시드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걸으면서 사라토가 올리브 오일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ginger and black garlic 올리브 오일을 하나집어 들었다.

정순덕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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