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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페이지에 담은 50년 전 한인 역사

남가주 한인회 첫 한인록
1972년 주력 사업으로 발간
한인 4800여명과 단체 수록
규모 작지만 현재의 축소판

1972년에 발행된 한인록 책자. 앞쪽은 한인들의 이름이 수록된 인명록, 뒤 부분은 업소들의 광고를 수록한 옐로페이지로 구성돼 있다. 김상진 기자

1972년에 발행된 한인록 책자. 앞쪽은 한인들의 이름이 수록된 인명록, 뒤 부분은 업소들의 광고를 수록한 옐로페이지로 구성돼 있다. 김상진 기자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다.
1972년은 남가주 한인사회의 변곡점이었다.

그해 2월, USC 인근 옛 동지회 회관에 ‘무궁화 학원(현 남가주 한국학원)’이 문을 열었다. 두 달 후 대한항공은 서울-LA 노선의 첫 운항을 시작했다.  

‘한인회’란 명칭도 이때 처음 생겨났다. 당시 남가주한인거류민회에서 새롭게 간판을 바꿔 단 남가주 한인회는 첫 주력 사업으로 ‘한인록’을 발간했다. 그해 11월 2일이었다. 한인회가 선보인 최초의 한인록이었다.

한인록 발간은 한인 이민 역사의 자부심이었다.

당시 남가주 한인회 조지 최 회장은 발간사에서 “한인록이 교포 사회의 길잡이가 되고 서로 친교 하는데 다리가 되길 바란다”며 “그 힘으로 ‘제2의 한국’을 이 땅에 세우는 데 이바지한다면 그 사명을 다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본지는 UC리버사이드 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당시 한인록을 장태한 교수로부터 입수했다. 한인록은 50년 전 미주 한인 사회를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누런 종이 위 흑백 광고들은 ‘1972년’을 살아갔던 한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인록 제작은 당시 한인사회의 염원이었다.

남가주 한인회 조지 최 회장은 발간사를 이렇게 적었다.

“한인록 한번 만들어내자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일의 방대성과 소요자원 조달의 난관으로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교포 여러분의 지원과 협조를 얻어 밤낮으로 애써 온 결과 마침내 책자를 내놓게 됐다”.

당시 소상영 LA총영사(4대 공관장)는 축간사를 통해 “10년 전 수천 명에 불과했던 나성지역 교민 수가 이제는 약 4만 명에 이르는 대가족이 됐다”며 “이러한 대가족이 협동 단결하여 소수민족 사회의 모범이 되고 미국 사회에 적극 진출해 한민족의 우수성과 유용성을 과시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인록은 총 315페이지다. 크게 ▶업소록(500여 업소·기관·단체) ▶인명록(약 4800여 명)으로 나뉜다. 쉽게 말하면 미주 한인 사회판 ‘화이트 페이지(인명별 전화번호부)’와 ‘옐로 페이지(업종별 전화번호부)’인 셈이다.

한인록 편집은 당시 키스프린팅을 운영하던 김광제씨가 맡았다.

김씨는 편집후기에서 “5개월간 밤낮으로 일해온 보람이 있다. 하지만, 교포들의 주소 이전이 잦고 자료 근거가 불명확하여 완벽한 주소록을 내놓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정확하지 못한 아쉬움을 느끼나 이것이 연례사업이 되어 해를 거듭할수록 보다 완벽한 책자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인록의 첫 전면광고(15페이지)는 대한항공이다.

‘라성-서울 직행’.  

1972년 대한항공 광고

1972년 대한항공 광고

미주 여객 노선 취항 첫해인 만큼 한인록의 첫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굵직한 볼드체로 적힌 전화번호(213-484-1900)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항공 미주 지역 서비스센터 번호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미주 한인사회와 비교하면 규모만 작을 뿐 여행사, 보석상, 리커스토어, 마켓, 언론사, 술집, 비영리단체, 렌터카 업체, 극장 등 없는 게 없다.

한인록을 업종별로 분류해봤다. 먼저 금신엔터프라이즈(LA), 반도무역(LA), 대화물산(샌타모니카), 동양물산(가디나) 등 무역 관련 회사가 77개로 가장 많았다.

가발 업소는 총 57개로 두 번째로 많다. 그만큼 가발업이 당시 한인들의 주요 사업 종목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번째는 요식업이다. 대원각(LA), 이화원(LA), 최가네 식당(컬버시티), 왕관식당(LA) 등 총 24개의 식당이 한인록에 수록됐다. 이어 식료품점 및 마켓(20개), 리커스토어(11개), 태권도장(12개), 기계 수리 업소·회계사 사무실(각각 11개), 여행사(10개), 보험사(9개), 전자 제품 출장 수리 업체(9개), 미용실·봉제업체·병원(각각 7개), 트로피 제작·양복점·부동산·인쇄소(각각 6개), 차량 정비소·사진관·자동차 딜러·한의원·꽃집(각각 5개), 건축 업체·옷가게(각각 4개), 치과·술집·트럭킹 회사(각각 3개) 등의 순이다.

이때도 교회는 한인사회의 중심축이었다.

한인록에는 동양선교교회, 한인연합감리교회 등 교회(44개) 및 교계 단체(10개) 등 총 54개의 기독교 관련 기관이 이름을 올렸다. 숫자로만 보면 무역회사, 가발 업소 다음으로 많다. 한인 이민사는 교회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동문회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경기고, 용산고, 휘문고 등 고교 동문회(18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대학 동문회(15개)는 물론 UCLA, USC 등 미국 대학의 한인 동문회까지 설립돼 있었다.

당시 한인사회에서는 37개의 비영리 기관 및 한인 단체가 운영 중이었는데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분야는 다양하다.

남가주한미정치협회를 비롯한 나성카운티사회봉사부한인지부, 나성의료건강서비스센터, 남가주한인야구협회, 남가주총학생회, 과학기술경영인협회, 한인교향악단, 재미서부태권도협회, 남가주한인교회연합회 등의 단체가 설립돼 있었다.  

당시 가주신문사, 기독교신문사, 한미연합신문사, 미주한국어방송국 등 언론사도 다수 운영 중이었다. 미주중앙일보는 한인록 발간 2년 후인 1974년에 창간했다.

인명록을 살펴봤다. 김, 이, 박, 최, 배, 장, 주 등 89개의 한인 성씨를 추려 세대주, 영문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이 실려있다.

인명록으로만 무려 160페이지(한인록 25p~185p)를 할애했다. 한 페이지당 약 30명의 정보가 담겨있으니 4800여 명이 기록돼 있는 셈이다.

인명록을 쭉 훑었다. 대부분의 주소지는 LA다. 낯익은 지역도 더러 보인다. 유재풍(풀러턴). 신중현(세리토스), 안채선(샌타바버라), 유완순(롱비치), 윤병욱(하시엔다하이츠), 윤봉수(코스타메사), 이무용(패서디나), 이명원(샌디에이고), 이수녕(터스틴), 이상훈(헌팅턴비치), 이정숙(리버사이드) 씨 등 LA 외곽 지역 거주자도 간혹 눈에 띈다.

동명이인도 많다. ‘김영호’ ‘이영자’란 이름을 가진 한인은 LA지역에서만 각각 8명이 살고 있었다.

 

광고로 보는 ‘1972’ : 오늘의 ‘페니’는 내일의 ‘딸라’

뉴요크보험회사 광고 문안

다양한 비즈니스 업소 영업

 
한인록에는 유일하게 한인 변호사로 이름을 올린 ‘케네스 B. 장(Kenneth B. Chang)’이 있다.
훗날 남가주에서 첫 한인 판사가 됐던 고 장병조(1930~1982) 판사다.

검사로 활동하던 장 판사는 한인록이 발간된 1972년 플라워 스트리트 인근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었다.  

1972년 외환은행 광고

1972년 외환은행 광고

당시 한인 은행은 한국외환은행뿐이었다. 광고 문구를 살펴보면 ‘달러’가 한국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엿 볼 수 있다.

한국외환은행은 한인록 전면광고(288페이지)에서 ‘교포 여러분의 예금이 조국 한국의 산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됨을 고려하시어 많은 이용 있으시기 바랍니다. 예금에 대한 비밀은 절대 보장됩니다’라고 홍보했다.

뉴요크생명보험주식회사의 광고 문구는 그야말로 강렬하다.

‘가정의 기둥인 가장에게 만일의 경우가 생기면 남은 가족의 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3가지 불행이 있을 때’ ‘자신이 사망하는 것도 슬프지만,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써 슬픔 위에 역경을 더하지는 말아야 할 것’ ‘오늘의 페니가 가족을 보호하고 내일의 ’딸라‘를 보장한다.’

다 같이 자리에 앉아 그릴에 고기를 구워 먹는 독특한 방식의 ‘한국식 바비큐’는 한류 등의 영향을 힘입어 오늘날 타인종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50년 전에도 K-바비큐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당시 크랜쇼 불러바드의 ‘코리아나 바비큐 하우스’는 ‘당신의 테이블에서 곧바로 요리해서 먹을 수 있다’며 한국식 고기 굽는 방식을 광고 문구로 담았다.

가주 관광은 ‘관광의 전당’이라며 전면광고를 냈다.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년, 요세미티국립공원, 샌디에이고 시월드, 카탈리나 아일랜드,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 관광 프로그램은 대부분 서부 지역 중심으로 구성됐다.

한인록에 담긴 ‘유니버샬수튜디오’ ‘그랜드캐뇬’ ‘뻐스대여’ ‘로스휘릿츠’ ‘녹음 테프’ ‘고급 수에터’ 등 당시 외래어 표기도 눈에 띈다.

한편, 지금은 한국에서 진출한 CGV를 통해 최신 한국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5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버몬트 길에는 ‘한국인 극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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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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