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항소법원 존 리 판사] "넘어져도 다시 도전하세요"
최초 아시안계·한인 판사
파독 광부·간호사의 아들
“젊은이에게 용기 주고파”
연방 제7 항소법원의 첫 아시아계 판사, 최초의 한국계 판사가 된 존 이(54·한국명 이지훈.사진) 판사는 젊은이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이 판사는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종신직인 연방법원 일리노이 북부지원(시카고 연방법원) 판사에 오른 지 10년 만에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영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13일 이 판사를 일리노이·위스콘신·인디애나주의 7개 지방법원을 관할하는 제7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했고 연방 상원은 법사위 청문회를 거쳐 지난 8일 본회의에서 인준안을 가결했다.
이 판사는 “무척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라며 지명자 바이든 대통령과 추천인 딕 더빈·태미 덕워스 두 일리노이 연방상원의원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했다.
업무상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에 대해 이 판사는 “재판(trial)을 주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앞으로는 법정에서 변호인단의 변론, 검찰 진술, 증인 신문을 듣는 일이 드물어지고 법을 해석해 적용하는 심리가 더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최초’ 타이틀에 대해서 그는 “좋은 롤모델이 되고 영감을 줄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나도 젊은 변호사 시절, 법정에서 소수계 판사를 보기만 해도 힘이 났다”며 “차세대 젊은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판사는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꿈꾸지 않으면 이룰 것이 없다”며 특히 이민자 가정의 젊은이들에게 “미국은 누구에게나 제한 없는 큰 기회가 열려있는 땅,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살 날이 많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운다”며 “나도 크고 작은 좌절들을 겪으며 성장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회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고 조언했다.
이 판사는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한독근로자채용협정을 통해 독일에 광부로 파견한 이선구(83)씨와 간호사 이화자(80)씨의 맏아들로 독일 아헨에서 태어났고 네 살 때 부모와 함께 시카고로 이민했다.
시카고 교외 도시에서 초·중·고교 시절을 보낸 이 판사는 하버드대학을 거쳐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무부 환경천연자원국 소송 전담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시카고 대형 로펌 ‘메이어 브라운’, ‘그리포 앤드 엘든’, ‘프리본 앤드 피터스’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연방 판사로 발탁됐다.
이 판사는 한국에서의 관심에 대해 “감사한 마음뿐이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목표를 묻자 그는 “좋은 판사가 되는 것이 변함없는 목표”라고 답했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