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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죽은 자와 산 자의 이별 시간

김형재 경제부 부장

김형재 경제부 부장

1980년대 한 시골마을. 대여섯 살 남짓한 아이들이 한 무리의 뒤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간다. 긴 행렬 앞에서 동네 아저씨들은 커다란 꽃상여를 어깨 위로 맸다. 꽃상여 앞쪽에는 한 할아버지가 앉아서 손에 든 작은 종을 쳤다. 그 할아버지가 긴 곡조로 종을 치면서 뭐라고 노래하면, 상여를 맨 아저씨들과 뒤따르던 이들은 ‘어~야~어~여~어~’라고 장단을 맞췄다. 꼬맹이 눈에 그 모습은 묘한 신비로움이었다. 꽃상여는 고인의 추억을 달래듯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장지로 향했다. 그 소박한 행렬은 장엄해 보였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꽃상여 소리마저 정겨움으로 남아 있다. 꼬맹이에게 죽음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저 꽃상여 무리 뒤꽁무니를 따라가면 중간 쉬는 길목에서 빵을 얻어먹을 수 있어 기뻤다. 유년시절 각인된 추억이다.
 
성인이 되고 처음 마주한 죽음의 실체는 할아버지와의 이별이다. 중풍으로 고생하시던 할아버지는 5년 이상 전동휠체어에 의지하시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부터 병원 신세를 지셔야 했다. 육신과 정신의 간극을 극명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육신은 이미 생명을 다했다. 각종 의료기기의 도움 없이는 육신을 지탱할 수 없는 지경. 그럼에도 할아버지의 정신은 맑았다. 할아버지는 말 안 듣는 육신 때문에 짜증도 냈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는 간호사를 부르더니 “수고혔어. 고마워…”라고 인사했다. 간호사는 생명이 다한 노인의 마지막 인사를 직감했던 걸까.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할아버지는 퇴원 2주 뒤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의식은 또렷했다. 기능을 다한 육신 때문에 그분의 의식마저 사라진다는 사실, 지켜보는 이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란 실체를 온몸으로 체험한 시간이었다. 결국 의식마저 사라진 할아버지의 시신을 만지며 죽음이란 허망함을 곱씹어야 했다. 인간의 의식은 육신에 갇힌 유한한 인생이란 자각이 컸다.
 


죽은 자와 산 자 이별의 시간은 정신이 없었다. 삼일장이 치러지는 동안 가족은 문상객을 받느라 녹초가 됐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 친지는 그나마 위로가 됐다. 장례식장과 장지로 이어지는 삼일장은 그렇게 끝이 났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인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시간은 장례식이다. 이제는 시골마을에서의 삼일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에서 틀에 박힌 절차를 밟는 과정을 당연시한다. 미국은 한 번의 추모식으로 끝나 더 간소하다.
 
장례식,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마지막 인사다. 영영 떠나는 이의 넋을 위로하고, 이승에 남은 자들은 미안함과 그리움을 애써 달래는 자리다. 진심을 매만지고 인생의 의미를 되짚는 진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최근 한인사회에 고인과 이별하는 장례식의 변화가 눈에 띈다. ‘가족장’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장은 유족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에 집중한다고 한다. 고인의 부고를 굳이 널리 알리지 않는다. 문상객도 가족과 친지, 평소 고인과 정말 친하게 교류한 이들만 모인다.  
 
한 세대 이상 장례식을 도운 장의사들도 가족장을 추천한다. 수많은 고인과의 이별을 지켜본 이들 눈에도 가족장이 주는 ‘울림과 깊이’는 크다고 한다. 한 장의사는 “장례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자”고 묻는다. 그는 고인을 기리는 자리가 아닌 유가족의 허례허식이 주가 되는 요즘 장례식을 아쉬워했다. 장례식만큼은 ‘죽은 자와 남은 가족의 진중한 이별’에 의미를 두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김형재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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