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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을이 올 때면

푸른 물감 뿌려 놓은 듯
 
하얀 물감 섞어 놓은 듯
 
 
 
그 안에 켜켜이 쌓아둔 가을바람은
 
한나절 졸음을 쫓는
 
태양의 하품 사이로 미끄러지는 햇살에 업혀
 
 
 
뜨거움에 앓은 갈증 안고
 
백일기도 마친 배롱나무 꽃송이
 
바람 가마에 태워 살며시 대지 위에 내려놓고
 
흔들리는 가지에
 
힘 없이 매달린 황달진 이파리 귀에
 
내년에 다시 보자 소근 거립니다
 
 
 
배롱나무에 걸린 그늘로
 
등목 즐기던
 
부추꽃대 머리위엔 연분홍 머리수건  
 
사랑 벌레 방울 벌레 합주를 하고
 
흥겨워 춤을 추는 부추 잎 사이로
 
 
 
부추 밭 일궈 주셨던
 
어머니의 울뚱 불뚱한
 
손마디의 떨림이 들립니다

김수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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