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음식과 두통
잡식동물로서 사람은 지구상 다른 어떤 동물보다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쓴맛이 강해 다른 동물이 먹기 힘든 올리브를 기름으로 짜 먹거나 물에 담가 쓴맛을 제거하고 발효해서 먹는다. 매운맛이 강한 고추는 본래 캡사이신 수용체가 없는 새들이나 삼킬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런 자극에 굴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다 먹고야 만다. 대신 뭔가를 먹고 탈이 나면 다시는 그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생존을 위한 인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우리 몸은 완벽하지 않다. 때때로 인과 관계를 헷갈리거나 오작동하기도 한다.1972년의 일이다. 긍정심리학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이 스테이크를 먹다가 탈이 났다. 화이트와인과 식초를 버터, 달걀노른자와 섞어 만든 베어르네즈 소스를 곁들여 먹은 뒤 나타난 복통이었다. 하지만 셀리그만은 스테이크 소스와 자신의 증상이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확신했다. 셀리그만의 동료 한 명은 스테이크를 먹지 않았음에도 그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했고 셀리그만의 배우자는 스테이크를 먹었지만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아도 소용이 없었다. 셀리그만은 이후 10년 동안 베어르네즈 소스를 먹을 수 없었다. 이 일화는 너무도 유명해져서 특정 음식을 먹고 탈이 나서 그 음식 풍미를 기피하게 되는 것을 베어르네즈 소스 현상이라 부를 정도가 되었다.
초콜릿이 편두통을 유발한다는 생각도 인과관계에 대한 혼동 때문이다. 초콜릿과 두통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초콜릿이 편두통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그런데도 초콜릿을 먹고 나서 편두통이 생겼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제법 많다. 두통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편두통 전구증상으로 초콜릿을 먹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편두통으로 머리가 아프기 수시간~수일 전에 목이 뻣뻣해지거나 빛에 예민해지고 피곤하며 소변을 자주 보게 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때 뇌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시상하부도 평소와 다르게 작동하여 특정 음식을 갈망하도록 만든다.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단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도 있고 짭짤한 감자칩 같은 스낵을 찾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음식이 편두통을 유발하는 게 아니다.
2021년 ‘뇌 연구’ 학회지에 실린 연구 결과는 나도 모르게 이미 내 머릿속에서 진행 중인 편두통이 이런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식사를 건너뛴 뒤에 두통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에도 반드시 식사를 걸러서 두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편두통 초기 증상으로 속이 불편해져서 식사를 거르게 된 것일 수 있다.
내가 먹은 음식이고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인데도 알고 보면 이렇게 복잡하다. 음식을 먹을수록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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