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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라는 든든한 울타리

‘나들’이라는 낱말이 관심을 끈 적이 잠깐 있었다. 일인칭 대명사 ‘나’의 복수를 ‘우리’ 대신 ‘나들’이라고 하자는 주장이다. ‘우리’라는 집단주의로 뭉뚱그리지 말고, 독립적인 개성을 가진 ‘나’가 살아 있는 복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꽤 그럴듯하다. 다수결이나 정치적 판단으로 결정된 집단의지보다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감이 간다. 집단주의는 위험할 수 있다. 가령, ‘우리나라’라는 표현은 한국인을 모두 ‘우리’로 묶는다는 점에서 집단주의적 사고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특히 개인주의가 몸에 밴 젊은 세대들은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라는 공동체를 절대적으로 여겨온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개인주의적 주장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우리 마누라, 우리 엄마, 우리 집 같은 식으로 ‘우리’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이미 복수명사인 우리를 강조하는 ‘우리들’이라는 낱말, ‘저희’나 ‘저희들’도 자연스럽다. (중국어나 일본어에는 일인칭 복수를 나타내는 독립된 낱말이 없다)
 
그래서인지 ‘나들’ 주장도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잠시 반짝하다 스러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개인주의 성향은 대단히 빠르게 삶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나들’이라는 낱말은 사라졌지만, 실제 삶의 모습에서 개인주의 경향은 훨씬 강해진 것이다. 특히, 핸드폰이나 SNS 같은 온라인 통신이 우리 삶을 지배하면서 개인주의가 한층 심화되었다.  
 
거기에다 코로나 팬데믹이 겹치면서 개인화는 더욱 심각하게 가속화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혼자 사는 사람, 혼자만의 문화가 아주 흔해졌다. 재택근무, 화상회의, 줌 미팅 정도의 비대면 문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대면 일상에 익숙해진 MZ세대 사이에는 혼밥이나 혼술을 넘어 혼커(혼자 커피), 혼공(혼자 공부), 혼운(혼자 운동), 혼코노(혼자 코인 노래방), 혼캉스(혼자 호캉스), 혼영(혼자 영화), 혼생(혼자 보내는 생일), 혼쇼(혼자 쇼핑) 등 ‘혼놀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혼놀로그’라는 말도 눈길을 끈다. 이 말은 ‘혼자 노는 브이로그’의 줄임말로, 혼자 보내는 일상을 브이로그 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아날로그 꼰대인 나에게는 외계어처럼 들리고,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다)
 
첨단 통신기기들은 막강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긴밀하게 연결해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두를 외톨이로 만든다. 모두를 우리가 아닌 ‘나들’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모듬살이를 하는 동물이다”라는 말도 골동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인간이 정말 혼자서 살 수 있을까? 생존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의문이다.  
 
“혼자 있으면서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MZ세대가 ‘혼놀로그’를 즐기는 이유는 “혼자 있을 때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느껴야 마음이 안정되고 덜 심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씁쓸한 생각이 든다.  
 
‘우리’라는 낱말은 ‘울타리’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 울타리 안에서 부대끼면서 한솥밥 먹으며 사는 공동체가 바로 우리인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이 ‘나’와 ‘우리’의 개념을 헷갈린다는 뜻은 아니다.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 안심이 되고 편안하기 때문에 ‘우리’에 기대는 것이다.
 
낯설고 물설은 타향살이 서러운 이민사회에서는 우리라는 울타리가 한층 든든하고 고맙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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