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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아이슬란드 마라톤

1045 번호를 가슴에 달고 호텔 문을 나섰다. 바람이 많이 분다. 48도지만 춥게 느껴졌다. 10분 정도 걸어가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다. 9000명이 달린다고 한다. 42.2km 뛰는 사람과 21.1km 뛰는 사람, 10km 뛰는 사람이 다양하다. 출발점에 서면 가슴이 뛴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밟는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대서양을 끼고 도는 코스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바람을 안고 달리는 벅차고 힘이 두 배로 든다. 눈꺼풀이 경련이 일어나고 있다. 손으로 한쪽 눈을 덮고 뛰었다. 바람이 옆에서 불면 머리카락이 눈꺼풀을 감싸주어 괜찮았다. 바람결에 파도와 내가 뛰는 속도를 맞추는 느낌이 들었다.  
 
레이캬비크는 대서양 해안 도시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시청 앞에서 시작했다. 해안 길을 따라 달린다. 길도 깨끗하고 자동차, 자전거, 사람 같이 가지만 사람이 보이면 자동차가 먼저 멈춘다. 길이 좁고 골목이 많아 뛰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길을 가다가 어느 쪽으로 돌아야 하는지 표시가 되어있고 자원봉사자들이 길을 안내했다. 하프는 먼저 간 길을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너무 지루해서 힘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하프는 레이캬비크 곳곳을 후비고 다니는 코스였다. 넓은 정원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많고 예쁘게 꾸며놓아 사람들이 많이 구경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특이한 건축 양식으로 집을 지어 눈요기가 되었고 8층 이상 건물은 없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오리털 잠바에서 스웨터, 가끔 짧은 바지 차림도 보였다. 골목길에서 차도는 자동차가 지나가고 뛰는 사람들은 인도를 이용했다.  
 
우리 그룹 중에 하와이에서 온 남자분이 있었다. 무릎 수술을 받고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지만 세계 방방곡곡을 찾아 마라톤을 한다. 유턴해서 돌아오는 반대편에서 손을 흔들어 격려했다. 일하다가 다쳐 수술을 몇 번씩 한 사람도 있고 선천적 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으며 다리를 잘라 목발로 움직이는 사람, 때로는 지팡이를 짚고 걷다 뛰다 하는 사람도 있다. 땀을 흘리면서 힘들고 어려운 길을 한발 한 발 내딛는 모습이 눈물겹고 그 어려움을 뚫고 나와 자신과 싸우는 열정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그 사람 삶의 표식이다. 그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이 나이에 튼튼한 두 다리로 뛸 수 있는 재산이 있다는 것에 무한한 뿌듯함을 느꼈다.  
 
속도가 빠른 사람들이 다 지나가고 뒤처진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나보다 젊은 여성이 인사를 한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왔다고 한다. 친정어머니가 이곳에 살고 있어 방문 왔다가 처음으로 마라톤에 도전한다고 했다.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아 힘들게 발을 내딛는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이상하게 이 마라톤 코스는 몇 마일 뛰었는지 표시가 없었다. 5마일, 10마일 표시를 해놓아야 어느 정도 왔으니 어떻게 스피드를 내야겠다는 암묵의 몸 상태를 조절해야 하는데 겨우 21.1km, 35km 두 곳이었다. 골목길 앞에서 안내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한다. 응급을 위한 앰뷸런스도 보이지 않고 물을 주는 곳도 몇 군데 밖에 없었다. 파워 젤이나 바나나를 나누어 주는 곳도 몇 군데 보이지 않아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들은 불편했을 것 같았다.  
 
마지막 2마일은 대서양 해변을 따라가다가 시청 앞까지 가는 코스다. 응원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가끔 무슨 날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끝마치는 장소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음악이 울리고 끝나는 지점을 밟고 손을 흔들어 환호하는 사람을 위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목에는 아주 큰 황금 메달을 걸어 준다. 화려하지도 않고 끝인지 시작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어느 마라톤이나 끝나면 사진도 찍고 축하도 받았는데 이번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호텔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호텔에 전화했더니 웹을 열고 찾으라는 답이었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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