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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 어머니의 딸

맑은 아침 딸네의 뜰에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를 뽑았다. 앞뜰 한쪽에 옹기종기 모인 잡초들이 눈에 거슬렸는데 마침 전날 저녁에 비가 왔던터라 줄기를 잡고 살살 흔드니 뿌리가 쉽게 뽑혔다. 집안에서 난장판을 벌리는 손주들의 고함소리가 아닌 상큼한 새소리가 신선한 아침을 화사하게 했다. 조지아 한 주택가의 한적한 고요가 내 여유에 좋은 배경이 되었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잡초에 열중했다. 색다른 명상의 자세다.  
 
오래전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예전에 친정어머니가 우리집 뜰에 나가서 잡초를 뽑으시면 나는 한사코 말렸다. 손목이 약한데 다치신다고 제발 그런 일 하지 마시라고 말렸지만 내가 출근하고 없으면 어머니는 앞뒷뜰의 잡초들과 씨름을 하셨다. 저녁에 어머니가 손목을 주무르시면 그날은 밖에서 오랫동안 잡초를 뽑은 날이었다. 그때는 어머니가 고집스레 풀들과의 전쟁을 하신다고 여겼지 당신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명상을 하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잡초를 뽑으면 어머니의 고충을 헤아리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후회한다. 아들네가 아닌 딸네에 머무시며 불편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퉁명한 딸의 눈치를 보면서 손목이 시려도 아프다는 말을 못하신 어머니는 당신과 다른 생활방식을 선호한 딸을 힘겨워 하셨다. 함께 사는 동안 우리 모녀는 세대와 문화차이에서 헤어나질 못했고 전적인 타협을 못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영원히 사시리라 믿었던 철없던 딸은 어머니를 잃고서야 철이 들었다. 이제 할머니가 되어서 딸네의 뜰에서 잡초를 뽑으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딸들이 밖으로 나왔다. 집안을 다 돌아봐도 나를 찾지못해서 당황했다는 그녀들은 내가 내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지금의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혼자서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 밖으로 나섰다는 것과 잡초를 뽑으면서 내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고 “더운데 엉뚱한 일한다” 면서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계속 잡초를 뽑는 나를 주시하던 큰딸이 “예전에 할머니가 그렇게 하셨는데” 말끝을 흐렸다.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 내 어머니가 하신 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당연한 것보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린시절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관념을 중시하신 할머니와 미국식 사고방식을 우선하는 어머니와의 가치관 충돌을 보면서 자란 딸이다. 영어권인 집안에서 남편은 나와 티격태격하면 꼭 내 어머니에게 일본어로 도움을 청했고 그러면 어머니는 나에게 한국어로 훈계를 하셨다.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구시대의 여성상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우리 모녀의 관점이 달랐으니 삶을 관조하는 생활 자세도 당연히 다르리라 생각했던 딸은 여러 면에서 “할머니가 생전에 하신 말씀과 행동을 똑같이 하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신기하다” 했다.  
 
나는 분명히 변했다. 성장하며 받았던 도덕교육에 미국 공군에서 철저하게 받은 정직과 성실을 가진 진실성이 내 의식의 기반이었다. 옳고 그름만 아니라 끊고 맺음을 분명하게 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도덕적 갈등을 많이 가졌다. 친정식구들도 피곤하다 했으니 남편과 딸들은 오죽했으랴. 나름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하늘을 보고 부끄럼이 없도록 살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은 큰 실책을 범했다. 매사에 내가 좀 더 지혜롭게 처신했더라면, 조금 더 따스한 배려로 대인관계를 유지했더라면, 융통성을 가지고 적절히 사태를 처리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요즘 나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자주 가진다. 더불어 그동안 살면서 내가 선택한 결정들로 인한 인과응보를 명확하게 살펴본다. 내 과거의 흔적이 마치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아쉽고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여기저기 뚫린 구멍들은 살면서 사귄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으로 채워져서 어느정도 메꾸어져 있다. 서로 기대고 산다는 사람살이가 묘하고 재미있게 그때 그때마다 내 부족함을 메워준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어머니의 딸이다. 은연중에 어머니를 닮아가지만 딸들의 삶에 참견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는다. 큰딸과 손주는 내일 제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내 일상을 찾는다. 그리고 훗날 이민 2세인 내 딸들은 나처럼 자식의 집을 찾아가서 잡초 뽑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을 안다.

영 그레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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