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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미주 화가의 롤모델 박래현, 최욱경

한국 문화가 드디어 세계 예술계 정상에 당당하게 올라섰다는 실감이 생생하다. 영화, 클래식 음악, 대중문화, 스포츠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연이어 세계 최정상의 대접을 받고 있다. 자랑스럽다.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들에게는 큰 자부심이 되고, 격려가 된다. 물론,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한류 선봉장으로서의 책임은 그만큼 무겁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미주 작가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자기 정체성을 단단히 세우고, 스스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이 복잡한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사회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서 있는가? 한국적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같은 근본적 질문에서 자기성찰은 시작된다. 그렇게 찾은 정체성과 한국적 아름다움을 미국 미술과 융합하는 것도 근본적 과제다. 여성 작가들에게는 이런저런 현실적 장벽이 더 있다.  
 
이런 과정에서 구체적인 길잡이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선배 작가들의 경험일 것이다. 예를 들어, 박래현이나 최욱경 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두 문화 사이에서 겪은 아픔, 외로움, 어려움, 괴로움, 고뇌와 기쁨 같은 작가적 정신세계는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실전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이들이 겪고 이겨낸 정신적 고뇌의 경험이 미주 한인화가들에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몇 년 사이 박래현, 최욱경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이를 계기로 활발한 연구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화가 박래현은 확고한 자기 세계를 확립했던 47세의 나이에 용감하게(?) 미국 뉴욕으로 와서 판화와 태피스트리 등을 새롭게 공부했고, 이 공부가 새로운 차원의 작품세계를 여는데 큰 자극이 되었다. 7년의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 얼마 안 되어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새 세계를 마음껏 펼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한편, 최욱경은 서울미대를 졸업한 1963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공부하고 활동했다. 그 시기는 미국의 현대미술이 태동하는 격동기였다. 최욱경은 한국 미술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추상표현주의, 팝 아트 등 새로운 물결의 창조적 열기를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 매우 귀한 인물이다.  
 
그러나 큰 뜻을 품고 귀국했을 때, 한국의 미술계는 단색화 등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어서 제대로 뜻을 펴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뉴욕의 현장에서 활동했던 일본의 여성미술가 오노 요코나 쿠사마 야요이 등이 세계적 작가로 성장한 것에 비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최욱경은 귀국하여 작품에 몰두하면서,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새로운 경지를 열어 큰 기대를 모았다. 〈산〉 연작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45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처럼, 두 작가의 예술적 여정은 대조적이지만,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를 작품에 융합시키려는 노력은 공통된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미주 한인작가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한국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미국 미술의 기법과 조화롭게 작품화하는 일은 큰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치열한 공부와 활발한 토론을 거듭하면서, 뛰어난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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