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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가족 사진

"귀중한 날들
사진으로 남겨
힘들 때마다
꺼내 봐야지"
 
지난 7월 4일, 많지도 않은 우리 4식구가 모여 사진을 찍었다.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 가족의 기념비적 사진이었다. 우리 식구는 남편은 한국에 있으면서 가끔 미국에 오고 큰아들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 년에 두 번, 7월 4일 독립기념일 연휴 때와 11월 추수 감사절에 LA집에 온다. 나는 LA의 작은 아들 집을 베이스 캠프로 LA와 한국에 있는 남편 집을 오간다. 그러다 보니 4식구가 다 함께 모이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우리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이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요새는 누구나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사용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는 스마트폰도 없고 카메라가 비싸서 아무나 가질 수도 없었다. 그러니 가족사진은 기념일 등 가족의 행사나 특별한 날에 옷을 갖춰 입고 사진관에 가서 자세를 바로 하고 함께 찍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앨범에 보관하거나 액자 등에 담겨 오랜 시간 잘 보이는 곳에 전시용으로 걸어 놓거나 진열해 두었다.  
 
이번에 우리가 찍은 사진은 평상복 차림으로 집에서 셀카로 찍었다. 어렵게 한자리에 모였으니 우리 함께 사진을 찍자고 내가 남편을 설득하고 남편은 사진 찍기 싫어하는 아들들에게 “엄마 좀 한 번 봐 주자”고 사정을 해서 찍게 되었다.  
 
남편은 은퇴 후 대충 6개월에 한 번씩 한국과 LA를 오가며 지냈는데 80 고개를 넘어서 이제는 오랜 시간 비행기 타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비싼 비즈니스 좌석을 타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내가 덜컥 병에 걸려 입원까지 하게 되니 앞으로 또 무슨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니 남편도 고령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가지 걱정이 생겼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며, 그 귀중한 날들을 스마트폰 사진으로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아들들은 나의 그런 심경의 변화를 모르리라.
 
우리 식구들은 나 빼고 셋이 다 남자들이라 그런지 사진 찍기를 싫어한다. 그토록 싫어하는 데는 내 책임이 크다. 젊어서 한때 내가 사진 찍는 것에 심취하여 식구들을 모델로 마구 찍어 댄 적이 있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얘들아, 여기를 봐” 하면 제법 포즈를 취해주다가 좀 커서부터는 사진만 찍으려 하면 고개를 돌려 사진마다 뒤퉁수만 보였다. 남편은 사진 찍기를 싫어한다고 하기보다는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밤늦게야 집에 들어오는 언론인인지라 한가하게 사진 찍을 시간이 없었다. 해마다 결혼기념일에는 꼭 찍기로 약속을 했지만 언제부터 인가 유야무야가 돼 버렸다. 그러니까 이번 사진은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모두 어렵게 시간을 조정해서 만든 기념비적인 가족사진이다.
 
요즘 인터넷에는 아들 둔 엄마들의 자조 섞인 유머들이 꽤 많이 떠돌아다닌다.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 평소에 나는 목메달을 목에 걸고 딸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들이 내가 아프니까 엄마를 위해 벌 벗고 나섰다.  내가 병석에 누워서 지낸두 달간은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아픈 게 오히려 가족에게 가장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은 시간이었다.  LA에서 같이 사는 작은 아들은 내가 재활센터에 있는 동안 엄마 혼자 밥 먹는 모습이 초라하다고, 찾아오는 가족이 없으면 간호사들도 무시한다며 퇴근 후 되도록이면 매일 면회를 오다시피 했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아직 오지 않은 상태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나를 돌봐 줬다.
 
멀리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큰아들은 두 번이나 휴가를 내서 나를 보러 왔고 매일 내 상태가 어떤지 전화로 점검했다. 또 다음과 같은 카톡으로 내게 감동을 줬다. 난 10대에 한국을 떠난 내 아들이 그렇게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줄 몰랐다.  
 
“어머니, 제가 교회는 안 다니지만 어머니 아프지 마시라고 기도해요. 소중한 우리 어머니, 빨리 회복하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실 것을 바란다고 기도하고 있어요.  어머니 힘내세요.”,  
 
“어머니, 오늘은 어떠세요? 요섭이 말로는 안정이 되셨다는데 그래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어머니, 몸이 안 좋으시면 돈 걱정 마시고 911 불러서 병원에 입원하세요.”  
 
“돈 걱정 마시고 몸이 좋아지실 때까지 병원에 계세요.” 등등.  
 
당시는 내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척추의 신경을 누르는지 숨도 크게 못 쉴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아들의 효심에 감동해서 격하게 몸을 들썩이면 아플까 봐 울지도 못하고, 그것이 또 슬퍼서 소리 없이 눈물만 철철 흘렸다.  
 
이번 기회에 목메달 아들들의 효심이 금메달로 확실하게 증명된 셈이었다. 아들들은 목메달이 아니라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내가 입원했다는 작은아들의 전화에 남편이 놀라서 LA서 입을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한국서 날라 왔다. 아들들에게는 고마운 마음만 표시하며 되도록이면 아픈 내색을 못 했다. 남편이 옆에 있으니까 든든하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대신해서 아프다고 엄살도 부리고, 왜 그렇게 간호를 못 하느냐고 신경질도 내고, 추한 꼴도 마음 놓고 보이고, 뭐니뭐니해도 남편이 제일 편했다.
 
두 달간 아프고 나서 7월이 되니 웬만큼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아파서 서러웠던 것도 기억하고 그동안 가족들의 고마움과 소중함도 기념하고 친구들에게 내 근황도 전할 겸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의 나는 예상외로 건강하게 보였다. 작은아들이 “엄마, 누가 이 사진을 보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중인 여자로 보겠어요? 고 했다. 어느 친구가 내가 카톡으로 보낸 사진을 보고 그 밑에 ‘행복’ 이라는 사진 제목을 붙여서 다시 보냈다. 사진을 보니 내가 행복해서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고 있었다.
 
예전에는 잘 보이는 벽에다 가족사진을 걸어 놓고 보았다면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된 지금은 배경화면에 가족사진을 지정해 넣고 힘들 때마다 꺼내 보고 마음을 다잡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가족은 힘이다. 힘들 때마다 나도 우리 가족 사진을 보면서 힘을 내야 하겠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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