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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보약 같은 친구

‘병은 자랑하라’라는 속담처럼 당뇨를 고백하니 같이 운동하자는 친구가 많아졌다. 수필협회 목사님은 차로 우려 마시라며 직접 농사지은 뽕잎과 쇠비름을 쇼핑백 한가득 주셨다. 당뇨라는 시련이 왔으나 운동 친구들이 늘고 선물도 받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신다’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난다.  
 
은퇴 후에는 실컷 여행하고 취미와 봉사활동으로 인생의 후반기를 신나고 멋지게 보내고 싶다. 당뇨 따위에 발목을 잡힐 수는 없다. 끼니처럼 운동을 습관으로 해야지 마음먹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던가. 의지가 약한 나는 동반자가 꼭 필요해서 매일 파트너를 바꿔서 걷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평일에 친구들과 동네 하이킹을 주로 하지만 다른 일정이 생기면 취소하니 꾸준히 하기가 어렵다.  
 
한인타운으로 일을 다녀 자주 못 보던 친구가 갑자기 전화했다. 주말에 바닷가 백사장 맨발 걷기를 하자며 맨발 걷기의 장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신체 여러 부위와 연결된 발의 어떤 지점이 자극돼서 건강에 좋다는 논리다. 우리 몸의 각종 장기에 혈액이 왕성하게 공급돼서 면역력이 좋아진다며 유튜브 영상도 여럿 보내왔다. 이론이 그럴싸하고 오랜만에 바닷바람도 쐴까 하여 따라나섰다.  
 
나는 올빼미과로 새벽에 일어나기가 어렵지만, 바닷가에 도착하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공기부터 다르다. 안개 낀 새벽 바다의 시시각각 변하는 물빛, 하늘빛은 가히 환상적이다. 촉촉한 고운 모래가 발에 직접 닿는 부드러운 촉감은 신선하다. 바다가, 하늘이, 모래가 나를 감싸 안는 느낌이 들어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15분만 운전하면 바다가 있는데 왜 까맣게 잊고 살았을까. 신세계로 안내해준 친구에게 감사한다. 다른 친구 한 명을 데려와서 혹시 한 명이 빠지더라도 둘이라도 꼭 걷자고 약속했다. 전망 좋은 식당에서 맛난 브런치까지 먹고 집에 왔는데 정오밖에 안 됐다. 운동과 힐링으로 아침 충전 빵빵하게 하고 하루도 길어졌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날개가 있다고 자신의 힘만으로 나는 새는 없다(No bird soars too high, if he soars with his own wing-William Blake)’라는 시 구절을 찾았다. ‘자기 날개 힘만으로 날아오르는 새는 결코 높이 날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새들이 V자형으로 날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절약한다고 들었다. 지지해주는 친구가 날개에 힘을 더해 줄 때 훨훨 날 수 있다는 뜻 같다. 마음이 힘들고 가라앉을 때 나의 사정을 들어만 줘도 위로가 되는 사람, 실수와 어설픔을 채워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친구이다. 친구의 고마움을 생각했는데, 집에 오는 길에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보약 같은 친구’라는 노래가 나온다. 가사를 음미하며 들었다. 친구는 정말 보약 같은 존재다.  
 
평소에는 새벽 1시가 될 때까지 말똥거렸는데, 새벽 백사장 걷기로 밤 10시도 안 된 시간에 나른하고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나 벌써 아침형 인간이 된 건가.

최숙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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