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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여행의 즐거움과 중요성

딸 둘을 따라나선 여행, 신바람에 마음도 가벼웠습니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정! 돌연 옛날 아이들과의 가족여행이 떠오릅니다. 아이들 치다꺼리에 힘들었던 낡은 기억들 말입니다. 허나 어느덧 나이를 지긋이 먹어버린 아이들이 이 엄마의 앞, 뒤, 옆을 보살핌에 스르르 내 자존심이 무릎을 꿇어 버렸습니다. 보호받음이 행복하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고 한편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비행기를 길게 두어번 갈아타고도 자동차로 또 서너 시간, 크로아티아라는 나라의 Bay(만)를 찾아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참으로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는 촌닭이었습니다. 매일 몸에 좋다고 챙겨 먹고 있는 올리브유, 바로 그 나무를 그곳에서 소개받을 줄이야.  어리둥절 속에 그림에서 보았던 빨간 지붕들이 낯익어 왔습니다.  
 
잠시 후 길가에 열매가 쫑쫑이달린 잎이 널찍한 나무, ‘무화과’다. 저의 목소리였습니다. 여기가 어디쯤의 지상낙원이었던가? 연륜을 자랑하며 풍성히 열매를 달고 있는 고목이 바로 제가 그리도 좋아하는 무화과였습니다. 또 한 번에 놀람과 뿌듯함이었습니다.
 
잠시 후 도착지 급 내리막길은 숨기고 온 제 어지럼증을 앞세웠습니다. 뒤편으로 올려다 보이는 민둥산, 발밑으론 가파른 계곡. 순간 저는 딸들이 야속했습니다. 여기가 이 엄마를 위한 휴가 터였던가? 인제 와서 이 일을 어쩌나 했습니다. 저렇게 맑고 푸르른 물에 발이라도 담궈 보아야 하는 저의 목적과 기대가 어디까지였던가? 엄마를 해변으로 부축하려는 아이들을 뿌리치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빈방에 홀로 앉아 주섬주섬 용기를 불러야 했습니다. 난간도 없고 끝도 보이지 않는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갔습니다. 홀연 바닷가에 수영복 차림 엄마의 등장에 아이들의 시선은 환영과 기쁨이었습니다.
 


오름길은 나의 지구력을 총동원해서 돌진했습니다. 계단이 무려 118개였습니다. 하루 이틀. 제 다리 근육이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적합한 근육운동이 바로 거기에 있었던가요! 정돈된 마음으로 바라보는 해변에 맑고 잔잔한 파도와 깨끗하고 큼직큼직한 자갈 사장이 정겨워 왔습니다. 노을의 아름다움, 어둠이 짙어진 밤, 떠오르는 보름달을 기다리며 별똥별을 세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이 이 엄마가 모래사장에 누워 비 오듯 쏟아지는 별똥별을 따라 꿈을 나열하던 추억을 더듬게 했습니다.  
 
딸들에게 엄마의 옛이야기를 주섬거리다 보니 갑자기 ‘격세지감’이란 사자성어가 머리를 스쳐 갑니다. 아, 요즘 이 시대 아이들은 해, 달 혹은 별과 어떤 대화를 나눌까? 옛적 이 엄마의 작은 소망보다는 지구와 인류를 논하고 염려하는 보다 지적인 대화가 아닐까? 부디 그런 진보된 삶을 살아다오 라고 격 높인 엄마의 생각을 슬쩍 남기고 자리를 비워주었습니다. Good Night 인사를 남기고 돌아서는 뒷전에 느껴지는 노파심이 시종일관 엄마라는 나의 딱지가 끈적끈적했습니다.
 
이 여행은 그동안 나에게 둔하게 길든 습관에서 깨어나 저에게 많은 새로움을 맛보게 했습니다. 그동안 나이 탓이라 넘겨버렸던 생각들이 새로운 용기와 지혜를 일깨워 주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 엄마가 고마움을 전할 수 있을까? 끙끙 앓고 있습니다.

남순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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