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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칼럼] ‘호모 사피엔스’의 믿음과 인플레이션

요즘 팬데믹의 공포는 많이 누그러진 대신 인플레이션이 시대적 화두이자 공포가 됐다. 6월 미국 소비자물가(Headline CPI) 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9.1%로 1981년 11월(9.6%)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식품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Core CPI) 항목 내에서도 의류 등 상품 가격, 임대료 등 서비스 가격의 상승폭이 모두 확대됐다.
 
인플레이션이 확산 및 지속되면서 물가안정이 책무인 중앙은행들이 적극적 정책대응에 나선 가운데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연준은 6월에 이어 7월에도 정책금리를 75b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는 등 긴축을 강화하고 있다.  
 
이웃 캐나다는 미국보다는 물가상승률이 낮음(6월 8.1%)에도 캐나다 중앙은행은 7월 정책회의에서 시장예상(75bp)을 뛰어 넘어 100bp나 인상하는 울트라 스텝을 단행했다. 한편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가 강화되면서 미국 GDP 상승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경기침체(Recession)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과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 등 정책대응을 둘러싼 각종 논의 및 시장반응을 보고 있자면 경제의 변화는 금리, 물가상승률, GDP 등 경제지표들 간의 교과서적 인과관계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금리가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이 오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소비가 둔화되면서 물가가 잡히고 성장(GDP)도 일정 부분 둔화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대중들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인과관계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무미건조한 인과관계 이외에도 양념이 추가된 그럴듯한 이야기(행동경제학자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이를 ‘내러티브’라고 정의)를 만들어내고 이를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CPI 상승률이 전월보다 높게 나와도 예상치보다 낮으면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달해 진정되고 있다는 내러티브가 탄생하기도 하고,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 인상을 단행했으나 경기침체를 우려하여 다음에는 100bp까지는 인상하지 않을 거라는 내러티브가 주식시장의 안도 랠리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대중들 사이에 퍼진 내러티브(믿음)가 경제를 움직이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거나 그러한 내러티브가 제시하는 믿음에 기대려는 행태는 대중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정책당국도 대중의 믿음(기대)에 촉각을 세우고 그 방향이 정책목표에 어긋날 것 같으면 이를 수정하기 위한 정책수단을 강구하고 각종 매체를 빌려 바람직한 믿음을 설파하려고 애를 쓴다. 연준이 자이언트 금리인상을 단행한 것은 인플레이션 지속 기대가 대중의 마음속에 자리잡는(entrenched)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등을 제치고 먹이사슬의 정점에 오른 성공의 비결이 정교한 언어 및 이를 바탕으로 한 개념, 이데올로기 등 상징체계에 있다고 했다. 법인격을 갖춘 주식회사, 신용화폐 등이 상징체계의 대표적 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들도 상상으로 만들어내고 모두의 동의(믿음) 하에 그 질서를 따른다. 대중들이 경제에 대해 믿음을 형성하고 정책당국자들이 목표로 하는 믿음을 설파하려고 애쓰는 것은 상징체계 속에서 진화한 인류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다만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큰 때일수록 대중들은 가급적 객관적인 인과관계에 기초한 믿음에 더 기대야 할 것이고, 정책당국도 대중의 기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 믿고 기대하는 내용대로 미래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이른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힘은 경제현상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박주하 / 뉴욕사무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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