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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임신중절과 우울증

“내가 벌을 받아서 유방암에 걸린 것 같아요.” 30대 후반인 백인 환자는 ‘벌 받다(punished)’라는 단어를 썼다.  
 
“무슨 뜻이에요?” “몇 달 전에, 아이를 지웠어요.”
 
임신중절을 하고 나서, 깊은 우울함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던 때에, 그녀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나에게 치료를 받으러 왔다. 낙태 수술의 ‘죗값’, 아이를 포기한 벌이 유방암으로 업보가 되어 되돌아왔다고 말하던 그녀는, 행복할 수 없게 되는 보속(補贖)을 받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고 말했다.  
 
중병이나 불상사가 있으면, 인과응보라고 여기고 자신을 탓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동서양이 비슷하다. 불교의 가르침, 또는 죄의식을 일깨우는 기독교의 가르침 가운데 형성된 사회성이 아닌가 싶다.
 


유방암 발병과 임신중절은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녀의 죄책감은 의외로 무거웠다. 인위적 유산을 한 여인들의 자살률은 일반인들보다 세 배나 높다. 10대인 경우는 자살 시도율이 10배나 높고, 자살 성공률이 4배에 달한다고 한다. 인위적 유산을 한 경험이 있는 성인 중 약 30%는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마약 또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유산의 결단을 쉽게 내리는 것은 아닌지, 거꾸로 생각해 본다.
 
미국은 지금, 여성의 낙태권을 폐지한 대법원의 판결을 놓고, 49년 전 낙태권을 인정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찬반의 의견들로 양분되어 있다. 결국, 낙태를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 것이며, 왜 낙태를 하려는 것인가, 낙태를 당하는 태아는 인간인가, 아닌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으려 분투 중이라고 할까?
 
49년 전, 미국 낙태의 역사적인 판례를 불러온 제인 로 (Jane Roe: 본명 Norma McCorvey)의 삶은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그녀는 이혼한 부모 중, 알코올 중독자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10살 때, 삼촌뻘 되는 친척에게서 강간을 당했다. 16세에는 첫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즉시 입양되었다. ‘로 vs 웨이드 (Roe vs Wade)’의 역사적 판례를 만든 세 번째 임신은 그녀가 원했던 낙태로 끝내지 못하였다. 세 번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역시 입양으로 귀결되었다.
 
‘로 vs 웨이드’를 정리해 본다. 당시 낙태와 소도미(Sodomy:항교)가 불법이었던 텍사스주에서 소도미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즉 미국인이면 누구나 가지는 기본권리이므로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입양 전문 변호사 자격으로 제인 로의 임신중인 세 번째 아이의 입양 절차를 도와주고 있던 게이(gay) 남자 변호사는 두 젊은 동료 여성 변호사들에게 그 내용을 알리게 된다. 그들은 제인 로의 세 번째 임신을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를 들어 합법적인 낙태로 처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파산법 변호사로 레즈비언인 린다 커피 변호사와 임신중절이 불법인 미국을 피해서 멕시코로 가서 소파 수술을 받았던 사라 웨딩턴 변호사가 그들이다.  
 
커피와 웨딩턴 변호사는 15달러를 들여 제인 로의 케이스를 법원에 접수한 원고였고 당시 지역 대표 변호사, 헨리 웨이드가 피고였다. 그렇게 시작된 미국 역사상 제일 유명한 재판 ‘로 vs 웨이드 소송’은 대법원까지 항소 되었다.  
 
제인 로는 이 판례로 미디어의 여왕이 되었다. 3권의 책 출판에 관여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이 과정 중에 프로-라이프, 프로-초이스를 오가면서, 여러 번 말을 번복했다고 한다.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교계, 보수파, 진보파, 때로는 미디어의 센세이셜리즘의 이용된 꼭두각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낙태가 불법으로 판결된다면, 낙태 이외에 생식의학에 동반되는 여러 이슈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면, 불임환자를 위한 체외수정이다. 시험관에서 정자와 난자를 결합해서 배아를 만든다. 실패를 우려해서 대략 4개 정도의 배아를 만들고 그중 가장 건강해 보이는 배아를 난자를 제공한 엄마나, 또는 대리 여인의 자궁에 정착시킨다. 쓰이지 않는 세 개의 배아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배아가 사람이라고 보는 지역에서는, 배아를 버리는 것은 범죄가 될 수 있다.  
 
매년 세계에서 1억4000만 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고 또 그것의 절반 정도인 7300만 명의 태아들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낙태된다. 임신중절 때문에 사라진 생명과 이 길을 선택했던 여인들이 5차원 세계에서 만나, 서로를 치유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뒷북 치지 말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차세대들과 일찍 생식학을 함께 공부하고, 알맞은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계획 없는 임신, 준비되지 않은 성생활로 파생되는 부작용을 예방하는 것처럼 더 중요한 교육은 없을 것이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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