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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 문전박대 뚫은 '한국 어르신'

[인터뷰] 나파밸리의 K-와인 이희상
18년 전 땅 일궈 와이너리로
최상급 포도만 손으로 수확
포도마다 발효 달리한 특성
바소 와인, 한미회담 만찬에

나파밸리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다나 에스테이트의 이희상 회장이 자신이 설립한 와이너리 발효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나파밸리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다나 에스테이트의 이희상 회장이 자신이 설립한 와이너리 발효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제너러서티 리(Generosity Lee)''. 현지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이웃에게 잘 베풀고 너그러워(Generous) 붙은 별명이다. 나파밸리에 온 지 약 20년. 외지인 특히 동양인에 배타적이던 이곳에서 이희상(77) 회장은 이제 동네 어르신 대접을 받는다.
 
"여기가 많이 변했어요. 살던 사람들이 자꾸 떠나니까…. 온통 밭밖에 없는 시골인데 젊은 사람들은 재미없지. 이러다 내가 토박이로 불리게 생겼네.(웃음)"
 
이 회장은 밀가루와 사료 사업을 하던 동아원그룹 회장을 지냈다. 그룹은 2016년 사조그룹에 인수돼 사조동아원으로 바뀌었다. 이 회장은 현재 ''다나 에스테이트(다나)'' 회장이다. 다나(DANA)는 2004년 나파밸리의 땅을 사들여 2005년 세운 와이너리다. 그의 호 ''단하(丹霞)''에서 이름을 땄다.
 
나파밸리 최초의 한국인 소유 와이너리 와인 평론가들이 꾸준히 99~100점을 주는 와인 각종 국제행사의 만찬주. 다나는 와인업계에서 이런 호평을 받는다. 이 회장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어떻게 명품 와인을 만들어냈을까. 이달 초부터 몇 차례에 걸쳐 화상으로 인터뷰한 이희상 회장은 "이제 한국 식당 어디를 가도 와인이 있고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흐뭇하다"고 했다.
 


시음용으로 놓인 다나 와인(왼쪽)과 소비뇽 블랑 포도.

시음용으로 놓인 다나 와인(왼쪽)과 소비뇽 블랑 포도.

 
-왜 미국까지 와서 와인을 만드나.
 
"한국에서 90년대에 와인 수입사(나라셀라)를 하다 보니 자주 나파를 오갔다. 한 번 최고 와인을 만들어보자 싶었다."
 
-''나파살이''는 어떤가.  
 
"(현지인의) 마음 얻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때만 해도 한국 하면 한국전쟁과 북한 핵실험만 떠올리던 때라 선입견도 심했다. 심지어 처음 물꼬를 튼 조셉 펠프스도 홍콩이나 인도는 가면서 서울은 (전쟁 날지 모른다고) 안 오더라. 나파밸리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존경받는 존 셰이퍼도 문전박대하며 만나주질 않았다."
 
이 회장은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친절로 수년간 나파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인사했다. 문 앞에 선물도 놓고 오고 동네 식당에서 만나면 그 손주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 줘가며 정성을 들였다. 그런 ''정(情)''이 나파밸리의 근간인 ''기부 문화''와 통하면서 조금씩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정만큼 중요한 건 ''장인정신''이었다. 다나 와이너리는 현지인들도 감탄할 만큼 정성을 들이는 곳이다. 다나엔 헬름스.크리스털.로터스.허쉬 4개의 포도밭이 있다. 포도는 모두 유기농법으로 재배되고 나무 하나하나에 수분량을 알려주는 센서를 달아 개별 관리를 한다. 수확할 때는 이른 새벽 100% 손으로 따는 데 가장 잘 익은 포도만 골라 개별 수확한다. 이렇게 고른 포도를 또 한 번 선별해 최상급 15%의 포도만으로 와인을 만든다.
 
다나는 나파밸리에서 유일하게 포도밭마다 서로 다른 발효 시설을 쓴다. 포도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이렇게 발효한 와인을 프랑스산 오크통에 넣어 18~24개월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며 숙성시킨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은 나파에서도 통했다. 본격적으로 와인을 만든 지 3년 만에 2007년산 와인이 업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을 받더니 2012년에도 2010년산이 100점을 받았다. 백인들의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나파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이었다.
 
현재 다나 와인은 미국 최고급 레스토랑과 싱가포르항공 1등석 기내식 각종 국제행사에 제공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만찬에도 ''바소 2017년'' 레드와인이 올랐다.
 
-어떤 와인을 만드나.
 
"''다나'' ''온다'' ''바소'' 세 종류 레드와인이 있다. 연간 생산량이 10만 병밖에 안 된다. 가장 윗급인 다나는 675달러로 연간 1만 2000병을 한정으로 만들어 미국에서 회원제로 판다. 온다는 250달러로 1만3000병 바소는 90달러로 7만 병씩 만든다. 허쉬밭 제일 산꼭대기 포도로 만드는 화이트 와인도 있는데 1년에 1000병 밖에 못 만들어 미국에서도 구하기 어렵다. 이웃들이 ''세계 최고의 화이트 와인''이라고 칭찬한다.(웃음)"
 
-좋은 와인은 어떤 와인일까.
 
"싸고 맛있는 게 제일 좋지.(웃음) 와인은 누구와 먹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와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량이나 취향을 솔직하게 말하고 추천해달라 조금만 달라고 하면 된다. 남의 눈치 보느라 받아놓고 남기는 게 오히려 실례다."  
 
처음 나파밸리로 간 건 와인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와인이 지닌 ''문화 외교''의 힘이 상당하다는 걸 깨달았다. 와인은 대중적인 동시에 전 세계 최상류층이 즐기는 술이기도 하다. 와인을 매개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한국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매년 나파밸리 와인 경매 행사엔 전 세계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의 유명인들이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이 회장은 이 경매에 다나 와인을 내놓고 상품으로 한국 방문을 내걸었다. 그 결과 코로나19 확산 전까지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제주와 합천 해인사를 방문해 해녀.사찰 문화 등을 만끽하고 돌아갔다.
 
이 중엔 빌 게이츠 후임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 회장이 된 존 톰슨도 있었는데 그는 제주 전복에 반해 매일 시장을 찾았고 "내가 가 본 곳 중에 제주가 최고"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와이너리도 방문객들이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공을 들였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옥을 연상케 하는 정원이 펼쳐진다. 손님들이 와인을 맛보는 공간은 한쪽 유리 벽 전체가 한옥의 문처럼 정원을 향해 젖혀지고 벽엔 신라시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비천상을 복원한 철 부조를 걸었다.
 
나무 헛간에는 한국 시골의 향수를 물씬 풍기는 대형 장닭 사진이 걸려 있는데 사진작가 준초이(최명준)의 작품이다. 이 밖에 한국 조각계를 대표하는 이영학 작가의 돌 작품 등이 곳곳에 자리 잡아 동양의 미술관 같은 느낌을 풍긴다.
 
나파에서 자리 잡았지만 남은 고민도 있다. 현재는 미국 문화와 영어 의사소통에 익숙한 사위 전재만(52)씨가 상주하며 대표로서 와이너리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지만 한 세대 이후엔 누가 이곳을 돌볼지 확신이 없어서다.
 
고 전두환 전 대통령과 사돈이어서 다나 와인이 등장할 때마다 ''전두환 와인''이란 논란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회장은 "와이너리 지분은 제가 40% 한국과 미국 투자자들이 각각 30%로 전 대표 지분은 없다"면서 "당국의 조사를 거쳐 혐의를 벗긴 했지만 비자금이 들어갔다는 얘기가 가장 마음이 힘들고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그의 목표는 ''한국인이 와인도 제일 잘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회장은 "얼마 전 교포 젊은이가 방문한 뒤 ''부모님의 나라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손편지를 보내와서 뭉클했다"며 "나파 아니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 조국에 자부심을 주고 한국에서 칭찬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직원에게 무조건 공손하라'' ''남들이 비판할수록 더 열심히 하라''는 철학을 늘 되새긴다고 했다.

글 이소아 기자, 사진 박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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