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삶] 화장하는 남자
잘난 남자들이 남자를 벗어던지고 시시한 여자가 되려고 한다/여자보다 작은 계집애가 되려고 한다/계집애가 되어 입술연지 붉게 칠하면 그 몸으로 편히 살 수 있다고/여자가 되면 세상물정 몰라라 쉽다고 누가 가르치나보다- 이향아 시인의 ‘내 아들이 건너는 세상’ 부분
남자와 여자는 구별되어 태어난다.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기도 하려니와 관습이나 사회적 통념에 길들여지며 남자와 여자로 살아간다. 현대 사회에서 여자와 남자의 역할이 모호해진 지는 오래되었다. 굴착기를 거뜬히 다루는 여자도 있고 여자의 얼굴을 마사지하는 고운 손의 남자도 있다.
남성성이란 무엇일까. 남자의 태도, 행동, 역할 등 사회적 젠더정체성이다. 통념적으로 남자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독립적이며 힘의 우의에 서 있어 폭력성이 있는 여자보다는 힘이 센 존재라고 여겨졌다. 오랜 부계사회의 역사 속에서 남성성은 가족부양이라거나 사회적 권력쟁취 같은 힘의 계보 안에서 설명되었다.
‘그루밍족’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말한다. 연예인 같은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남자가 아니래도 가벼운 기초화장은 물론 눈썹을 그리거나 립스틱을 바르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어느 때보다 외모가 중요해진 요즘 남자들도 외모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성형수술로 보완해 보려는 노력을 하게 된 것 같다.
발전된 한국의 성형기술은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브라질 의사들이 한국의 선진 성형기술을 배우러 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성형기술은 그다지 큰돈 들이지 않고도 부작용 없이 맘에 안 드는 신체 일부를 감쪽같이 고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특정 직업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들까지 매혹된다.
남자들이 피부 관리를 하고 화장을 하는 일에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종아리 털을 왁싱하는 것처럼 피부 관리를 위해 수염을 제모한다는 말을 들을 땐 참 난감하다. 미를 추구하는 남자들을 최대한 이해하여 보려던 마음이 주춤해진다.
남자들 자신에게 수염이 어떤 의미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수염은 남자를 남자로 존재케 하는 상징의 하나 아닌가 싶다. 성의 경계가 무너지고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다변화되는 시대의 사소한 잔영이라고 해도 이건 좀 이해하기 어렵다.
요즘 10대 소년들은 화장하는 것에 더 적극적이라고 한다. 외모에 자신이 없어 주눅 들기보다 화장을 해서라도 자신감을 갖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화장은 개인의 취향이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색조화장도 마다 않는다.
화장하는 것이 여자들만의 전유물일 까닭은 없다. 미에 대한 욕망이 여자만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쁘고 멋져 보이려는 남자들의 욕구가 지나치다보면 남자의 모습 자체가 굴절되는 건 아닐까 싶다. 남자 본래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남성적 아름다움이 있다. 수천 년 그 아름다움을 보며 여자들은 황홀해 했고 가슴 설레기도 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남녀가 따로 없겠다. 다만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미의 정체성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깔끔한 피부를 선호하더라도 남자 본래의 신체적 특성이 훼손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예쁜 얼굴을 원하더라도 건강하고 생동감 넘치는 근육까지 없애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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