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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향수는 무죄

이른 아침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윌슨 공원을 도는데 곁을 지나가는 한 백인여자 한테서 향수 냄새가 진동한다. 저녁에 뿌린 향수가 아침까지 가는지는 모르지만, 아침에 뿌리고 나왔다면 그녀는 사랑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아침 향수하면 즉시 떠오르는 한 장면 때문이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피트니스가 문을 닫자 아침 운동으로 해오던 수영 대신 걷기를 시작했다. 가까운 바닷가도 갔지만, 주로 우리 동네와 집 앞에 있는 작은 공원을 돌았다. 이른 시간에는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다가 해가 밝아올 때쯤 되면 개를 산책시키러 나오는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둑어둑한 시간에 마주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아시안 할머니로 웅크린 몸과 비척이는 걸음으로 봐서 병색이 짙어 보였는데, 몇 바퀴를 쉬지 않고 도는 것을 볼 때면 큰 병을 앓은 분의 삶을 향한 집념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를 뵌 지 얼마쯤 지났을 무렵이다. 공원을 도는 체격이 건장한 백인 할아버지가 몇 번 눈에 띄었는데, 공원 저쪽에서 인기척이 나서 보면 두 분이 한자리에 서서 한참 대화를 나누거나 다정히 걷는 모습이 보였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두 분 모습이 잦아졌고, 뭔가 조마조마하면서도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기가 넘치고 걸음에 힘이 실린 듯 느껴지던 할머니가 아니나 다를까 그 새벽에 화장을 하고  향수까지 뿌리고 나오셨다. 이른 아침의 맑은 공기 속이어선지 짙은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개인적으로 몸에 향수 뿌리는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언젠가 메이시 백화점에 갔다가 화장품 매장 앞을 지나는데 매장 종업원이 조그만 샘플을 몇 개씩 나눠주어 칙칙 뿌렸던 적이 있다. 향도 기분도 나쁘지 않았음에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없어졌다.  향수를 유용하게 사용하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마음뿐, 선물 받은 몇 개는 화장대 장식용으로 진열되어 있다.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가 “샤넬 N5를 입고 잔다”는 말을 남겨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프랑스의 ‘샤넬 N5’ .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도 없고 오래되어 거의 바닥을 보이지만, 선물한 분의 향기가 아련하게 전해져온다.  
 
기록에 의하면, 향수는 향료를 알코올에 녹여 만든 것으로 인류 역사와 같이 시작되었다. 신께 올리는 제단에 향을 피우는 종교의식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향으로 질병을 없애고, 신들이 보호해주며 나쁜 영혼을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유물에서 발견된 향수 용기와 왕과 왕비에게 향유를 뿌리는 모습이 담긴 벽화는 향수 사용의 역사적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향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서 미용과 치료에 적용했다.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화장과 함께 향료 사용을 즐겼는데, 로마의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던 비결 역시 허리춤에 숨겨둔 사향의 향수였다고 한다.  
 
얼마 전 여행 갔다가 벌레에 물린 상처가 심해 수영 대신에 동네를 걷고 있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계가 잘 진행되고 있을까. 모른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가 동네를 혼자서 도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같은 시간 공원을 돌고 있을 할머니를 떠올리며 가슴이 싸해짐을 느낀다.

오연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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