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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 초심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관성(慣性)’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익숙한 습관으로 사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 같은 문제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병들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안은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막상 실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관성 때문이다. 지금보다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그러니 세상 개선되거나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늘 요란하고 시끄럽기만 한 것이다. 예술에서도 그런 현상이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예술가를 가로막는 장벽이 바로 관성 또는 습관, 익숙함이다.
 
남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이야기다. 나는 지금 몸에 익은 관성에 기대어 늘 그렇고 그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심각하게 반성하는 요즈음이다. 반성한다고 바로 무슨 묘책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예술계의 어느 장르나 비슷한데, 열심히 해서 자기 작품세계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제법 명성이 생기면 그에 알맞은 성공이 보장되고, 이른바 자기 세계라는 틀이 만들어진다. “아무개 작가는 어떠어떠한 작품을 한다”라는 식의 틀. 그걸 ‘개성’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다.
 
일단 그런 틀이 생기면 어지간해서는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피카소 정도 되면 모를까,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면 위험이나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관성이 강하게 작용하게 마련이다.
 
결국 과감한 변신이나 파격적 시도는 엄두를 못 내고, 늘 하던 대로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정도에 그치게 된다. 그래서 잘 되면 끈질기고 철저하게 자기 탐구하는 진지한 작가로 평가되는 것이고, 자칫 방심하면 매너리즘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자세는 무척 다양하다. 화가를 예로 들자면 김창열 화백처럼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물방울만 그린 구도자적 작가도 있고,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해 몇 년마다 새로운 주제에 도전하는 화가도 있고, 수시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오락가락 정신없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로 말할 일은 물론 아니다. 핵심은 창조력과 긴장감 같은 것이다. 농축된 정신이 담긴 작품을 만드느냐, 익숙한 솜씨로 제품이나 상품을 제작하느냐의 문제… 그래서 너무 익숙해지면 둔감해지기 쉽고, 만만하게 여기기도 쉬움을 경계하는 말씀이 많은 것이겠지.
 
대배우 채플린이 연기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린 영원한 아마추어야. 거기서 벗어나기엔 인생은 너무 짧아.” 내게는 이 말씀이 큰 자극이 된다. 새기고 또 새겨들을 말씀이다. 달리 말하자면, 연기를 처음 시작한 아마추어의 설렘, 떨림, 긴장감, 겸허함 같은 소중한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져서 만만하게 여기는 교만함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씀….
 
말년의 루빈스타인이 “나는 아직도 무대에 나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너무나 떨린다”고 한 말씀을 음미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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