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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서 위로 올라온 교회…신분 상승하니 안주"

두레마을 김진홍(82) 목사는 꿈이 있다. 통일이 되면 북한 땅에도 두레마을을 세우고 싶다고 했다. 목회자에게 설교는 울림이다. 말을 통해 영향력을 미친다. 그는 요즘 "90세가 넘어서도 설교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김 목사는 설교를 하면서도 한국 기독교의 문제를 서슴지 않고 말한다. 지난달 28일 집회차 LA를 방문한 김 목사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는 한국 정치본지 11월29일자 A-2면〉에 대해 말하던 중 오늘날 교회가 가진 4가지 문제점을 지목했다.     4가지 문제가 무엇인가.   "요약하자면 무속화, 우민화, 물량화, 귀족화다. 한국 교회가 성장한 것을 보면 바닥부터 시작해서 위로 올라온 것 아닌가.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교사들은 맨 처음에 사회 하층민들에게 다가갔다. 나중에 그들이 신분 상승을 하면서 성공을 하게 되니까 현실에 안주해버린 거다. 게다가 기독교가 엄청난 성장을 하는 가운데 목회자 양성 과정 자체가 매우 안 좋았다. 아무 목회자나 양산했다."   오늘날 교회들은 어떤가.   "예를 들면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한국에서는 그 기간에만 1만여 개 교회가 없어졌다. 교인까지 감소했다. 과거에는 교회가 국가의 발전을 선도했는데 지금은 반지성주의로 인해 질적으로 하락했다. 사회는 지금 기독교를 외면하고, 기독교는 대처 기능을 상실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요즘 기독교는 정신을 차리고 있는 중이다."   왜 이런 상황이 됐나.   "한국 교회는 그동안 좋은 세월을 오래 누렸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좋은 세월을 보내면서 방심했다. 이 모든 건 기독교 본질에서 떠난 결과다. 지금 교회들은 병에 걸렸다고 봐야 한다. 대신 병은 치료할 수 있다. 우리에겐 신약과 구약, 성경이 있지 않나."   정치와 종교는 어떤 관계여야 하나.   "일단 교회는 정치 자체를 하면 안 된다. 좋은 정치가를 키우는 일을 해야 한다. 정치 일선에 나서는 건 기독교의 본질과도 어긋난다. 오늘날 현실에도 맞지 않는다. 교회는 본연의 일에 충실하면서 인재를 성경적 가치관으로 키워내는 일에 힘써야 한다. 예를 들면 여당뿐 아니라 야당도 좋은 야당이 돼야 하지 않겠나. 여당도 엉터리 여당 말고 제대로 된 인재들이 모여 일을 해야 한다. 기독교 용어에 빗대자면 정치권도 '본 어게인(born again)'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키워낸 유능한 인재들이 사회 각 영역에 필요하다."   평소 통일을 위해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지금 국제 정세는 통일에 유리한 분위기로 조성되고 있다. 통일은 박자가 맞아야 한다. 국내적으로 먼저 정비가 돼야 한다. 때문에 기독교는 북한과 통일이 될 경우 이를 흡수할 수 있는 준비를 지금부터라도 미리 해야 한다."   통일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현재 동두천에 시니어타운인 '꿈꾸는 마을'을 준비중이다. 총 235세대다. 한국은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인 65세에 정년 퇴직을 하는 전문가도 많다. 그들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계속 활용해야 한다. 꿈꾸는 마을에 연구소도 만들 예정인데, 뜻있는 사람들이 와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이런 마을을 또 세우고 싶다."   평소 교육의 가치를 중시하는데.   "현재 한국 사회는 공교육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 때문에 대안학교인 두레국제학교를 만들었다. 토론을 통한 교육, 스포츠, 성경 큐티 등을 강조한다. 영어 수업도 병행하고 있다. 학생을 중학생 때부터 영어로 발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최근에는 뉴저지 지역에서 진행된 창의력 대회에서 우리 학교가 금상을 수상했다."   교육 이슈는 왜 중요한가.   "예수님은 사역을 할 때 모든 걸 제자와 대화를 통해 하셨다. 오늘날 교회가 하는걸 보면 예수님의 사역을 제대로 벤치마킹하지 못하고 있다. 무조건 '일방적으로 믿어라' 식으로 했다. 이는 한국 교회에 반지성주의라는 폐해를 낳았다. 교회 내에서도 지성이 왕성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됐다. 아마 이 부분을 해결 못 하면 교회는 영원히 퇴출당할 것이다.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두레마을은 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데.   "땅은 정말 중요하다. 오염 문제가 심각하지 않나. 우리가 창조된 때로, 우리 조상이 살았던 그때의 상태로 회복하자는 것이다. 노년층이 많을 것 같지만 이러한 가치 때문에 두레마을에는 젊은층도 많다. 20~40대까지 골고루 있다. 두레마을을 세운 건 13년 전이다.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 새 책을 냈다.   "'내 삶을 이끌어 준 12가지 말씀'이라는 책이다. 나의 80년 삶을 이끌어 주었던 12가지 말씀을 통해 살아온 지난 세월을 정리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고비마다 나에게 영향을 미친 성경말씀으로 글을 썼다."   건강은 어떤가.   "나는 역경을 거치면서 살아남는 법, 한마디로 생존법을 몸으로 익혔다. 그러면서 건강을 관리하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최근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나보고 건강 나이가 50대라고 하더라."   관리 비결은.   "일단 소식(小食)을 한다. 뷔페를 가도 마찬가지다. 딱 정해진 양만 먹는다. 그리고 천천히 먹고, 정해진 시간에만 먹는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음식에 대한 절제를 익혔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한다. 건강 관리에 자신감을 갖게 되니까 요즘은 하나님께 90세가 넘어도 계속 설교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교회 안주 오늘날 교회들 한국 교회 한국 기독교

2023-12-04

[주간 증시 브리핑] 5주째 유지된 컴플레이선시(안주 현상)

주식시장은 이번 주도 올랐다.  다우지수가 2.4%나 폭등한 것과 달리 나스닥과 S&P500은 각각 0.3%와 0.7% 오르는 데 그쳤다.     나스닥은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가장 작은 상승 폭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3대 지수는 2년 만에 5주 연속 상승한 주를 기록했다.     다우지수는 그동안 뒤처졌던 것을 한꺼번에 따라잡으려는 듯 3대 지수중 가장 먼저 21개월 최고치로 반등했다. 또한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간 하락했던 것을 가장 먼저 완벽하게 회복하고  2주 연속 가장 크게 상승했다. 다른 지수들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조짐을 보였다.     3대 지수는 나란히 올해 11월을 작년 7월 이후 16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오른 최고의 달로 기록했다. 다우지수와 S&P500은 각각 8.7%와 8.9% 상승했다. 나스닥은 10.6% 폭등했다.     이번 주 발표된 3분기 GDP 잠정치는 예상치를 상회하며 2분기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10월 개인 소비 지출의 헤드라인 넘버는 예상보다 감소 그리고 근원 개인소비지출은 예상치에 부합하며 전달 대비 감소한 수치를 나타냈다. 모두 연착륙 가능성을 높이는 호재로 작용했다.     또한 10년 만기와 2년 만기 국채금리는 각각 2개월과 4개월 최저치로 밀렸다. 내년 상반기 혹은 빠르면 1분기부터 금리인하가 시작될 거라는 기대감도 형성됐다.     그럼에도 11월 내내 불붙기를 반복하던 매수심리는 이번  주들어 눈에 띄게 가라앉은 현상을 보였다. 투자심리가 마침내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All Clear’라는 안도감 속에서 나만 빼고 장이 오를 것을 조바심내는 심리가 강력한 FOMO 현상으로 이어지던 추세가 주춤하는 모양새를 나타냈다. 이번 주 목요일(11월30일)까지 3일이나 떨어졌던 나스닥은  나홀로 하락한 주로 마무리하기 직전에 와있던 상태를 전격 반전시켰다. 금요일 반등세가 나스닥을 약세에서 끌어 올린 것이다.     이제 어닝 시즌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다음 주 오라클, 브로드컴, 그리고 룰루레몬을 비롯한 189개 기업의 실적이 발표된다. 구인 이직보고서, ADP 민간고용, 그리고 비농업 부문취업자 수와 실업률도 발표된다.     연준의 12월 13일 금리 미팅을 앞두고 나오는 마지막 고용지표다. 금리 동결 가능성은 97.4%다. 지난주 4.5%로 떠올랐던 금리 인상 가능성은 2.6%로 줄어들었다.   김 재 환 아티스 캐피탈 대표 [email protected]주간 증시 브리핑 안주 현상 안주 현상 근원 개인소비지출 만기 국채금리

2023-12-01

[시론]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 초심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관성(慣性)’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익숙한 습관으로 사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 같은 문제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병들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안은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막상 실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관성 때문이다. 지금보다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그러니 세상 개선되거나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늘 요란하고 시끄럽기만 한 것이다. 예술에서도 그런 현상이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예술가를 가로막는 장벽이 바로 관성 또는 습관, 익숙함이다.   남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이야기다. 나는 지금 몸에 익은 관성에 기대어 늘 그렇고 그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심각하게 반성하는 요즈음이다. 반성한다고 바로 무슨 묘책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예술계의 어느 장르나 비슷한데, 열심히 해서 자기 작품세계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제법 명성이 생기면 그에 알맞은 성공이 보장되고, 이른바 자기 세계라는 틀이 만들어진다. “아무개 작가는 어떠어떠한 작품을 한다”라는 식의 틀. 그걸 ‘개성’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다.   일단 그런 틀이 생기면 어지간해서는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피카소 정도 되면 모를까,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면 위험이나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관성이 강하게 작용하게 마련이다.   결국 과감한 변신이나 파격적 시도는 엄두를 못 내고, 늘 하던 대로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정도에 그치게 된다. 그래서 잘 되면 끈질기고 철저하게 자기 탐구하는 진지한 작가로 평가되는 것이고, 자칫 방심하면 매너리즘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자세는 무척 다양하다. 화가를 예로 들자면 김창열 화백처럼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물방울만 그린 구도자적 작가도 있고,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해 몇 년마다 새로운 주제에 도전하는 화가도 있고, 수시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오락가락 정신없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로 말할 일은 물론 아니다. 핵심은 창조력과 긴장감 같은 것이다. 농축된 정신이 담긴 작품을 만드느냐, 익숙한 솜씨로 제품이나 상품을 제작하느냐의 문제… 그래서 너무 익숙해지면 둔감해지기 쉽고, 만만하게 여기기도 쉬움을 경계하는 말씀이 많은 것이겠지.   대배우 채플린이 연기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린 영원한 아마추어야. 거기서 벗어나기엔 인생은 너무 짧아.” 내게는 이 말씀이 큰 자극이 된다. 새기고 또 새겨들을 말씀이다. 달리 말하자면, 연기를 처음 시작한 아마추어의 설렘, 떨림, 긴장감, 겸허함 같은 소중한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져서 만만하게 여기는 교만함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씀….   말년의 루빈스타인이 “나는 아직도 무대에 나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너무나 떨린다”고 한 말씀을 음미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시론 안주 초심 말씀 초심 자기 작품세계 지구온난화 기후

2022-07-11

[시론]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 초심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관성(慣性)’이라고 한다. 사람 누구나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익숙한 습관으로 사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 같은 문제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병들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안은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막상 실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관성 때문이다. 지금보다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그러니 세상 개선되거나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늘 요란하고 시끄럽기만 한 것이다. 예술에서도 그런 현상이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예술가를 가로막는 장벽이 바로 관성 또는 습관, 익숙함이다.   남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이야기다. 나는 지금 몸에 익은 관성에 기대어 늘 그렇고 그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심각하게 반성하는 요즈음이다. 반성한다고 바로 무슨 묘책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예술계의 어느 장르나 비슷한데, 열심히 해서 자기 작품세계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제법 명성이 생기면 그에 알맞은 성공이 보장되고, 이른바 자기 세계라는 틀이 만들어진다. “아무개 작가는 어떠어떠한 작품을 한다”라는 식의 틀. 그걸 ‘개성’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다.   일단 그런 틀이 생기면 어지간해서는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피카소 정도 되면 모를까,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면 위험이나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관성이 강하게 작용하게 마련이다.   결국 과감한 변신이나 파격적 시도는 엄두를 못 내고, 늘 하던 대로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정도에 그치게 된다. 그래서 잘 되면 끈질기고 철저하게 자기 탐구하는 진지한 작가로 평가되는 것이고, 자칫 방심하면 매너리즘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해당 작가는 ‘개성’이라고 끝까지 우기겠지만….   작가의 자세는 무척 다양하다. 화가를 예로 들자면 김창열 화백처럼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물방울만 그린 구도자적 작가도 있고,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해 몇 년마다 새로운 주제에 도전하는 화가도 있고, 수시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오락가락 정신없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로 말할 일은 물론 아니다. 핵심은 창조력과 긴장감 같은 것이다. 농축된 정신이 담긴 작품을 만드느냐, 익숙한 솜씨로 제품이나 상품을 제작하느냐의 문제… 그래서 너무 익숙해지면 둔감해지기 쉽고, 만만하게 여기기도 쉬움을 경계하는 말씀이 많은 것이겠지.   몸에 익은 관성에 기대 안주하는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려면, 허구한 날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따분한 글을 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배우 채플린이 연기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린 영원한 아마추어야. 거기서 벗어나기엔 인생은 너무 짧아.” 내게는 이 말씀이 큰 자극이 된다. 새기고 또 새겨들을 말씀이다. 달리 말하자면, 연기를 처음 시작한 아마추어의 설렘, 떨림, 긴장감, 겸허함 같은 소중한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져서 만만하게 여기는 교만함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씀….   말년의 루빈스타인이 “나는 아직도 무대에 나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너무나 떨린다”고 한 말씀을 음미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시론 안주 초심 말씀 초심 자기 작품세계 지구온난화 기후

2022-07-08

[글마당] 도시락 여행

비가 곧 떨어질 듯 어두운 먹구름이 하늘을 가린 날이다. 뉴욕 턱시도 파크 호숫가에서 친구와 도시락을 먹으며 시시덕거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하늘을 보고 피식 웃는 내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친구와 나는 뉴욕시를 벗어날 때마다 도시락을 먹고 싶으면 싸고, 귀찮으면 빈손으로 간다. 서로 요깃거리를 장만할지 말지 말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도시락이 4개 그리고 와인 안주 2개, 토탈 6통이 겹칠 때가 있었다. 친구는 보온 통에 따뜻한 야채수프를 가져왔다. 시간에 쫓겼는지 감자가 서걱서걱 씹혔다. 그 서걱거리는 감자가 어찌나 맛있던지.   “조그만 여자가 오지게도 많이 먹네.”     게걸스럽게 먹다가 친구 말에 아쉬운 듯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나 이렇게 야외에서 먹는 즐거움에 놀러 다니나 봐.”   먹을 때는 몰랐는데 도를 넘은 것 같다. 소화를 시키지 못해 꺽꺽댈 불안감이 엄습한다. 고만 먹어야지 하면서도 계속 넣고 계속 들어간다. 목구멍에서 신물이 올라온다. 뱃가죽 늘어지는 통증이 왔다. 허리선이 드럼통처럼 일자가 되려고 한다.     집 밖에서 먹는 맛이 너무 맛있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차 뒤에 와인을 싣고 다니며 곁들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종이컵에 와인을 담아 뚜껑을 덮고 커피 마시듯 마시며 낯선 마을을 기웃거린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 전봇대를 끌어안고 우리는 수다를 떤다.     “우리 기차 타고 갔던 곳이 어디였지?”   “어디?”     “기차 떠날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고 역전에서 도시락 펼쳐 놓고 먹었잖아. 놀라서 뚜껑 덮어 싸 들고 뛰었던 곳.”     “아! 폽킵시(Poughkeepsie).”       “오래전 남편과 캐나다에 갔다 오다가 국경 검문소에서 캐나다에 뭐 하러 갔다가 오느냐고 물었어.”     “점심 먹고 오는데요.”   했더니 검문하는 사람이 웃으며 즐거운 여행하라던 기억이 나네. 그때 우리 정말 국경 넘어갔다가 점심만 먹고 왔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여행하면서 본 것은 기억나지 않고 먹은 것만 기억나.“   나는 먹었던 장면을 말해야 갔던 장소를 기억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가 거기다. 다 그렇고 그래서 그 많은 장소를 기억하기 쉽지 않다. 친구와 도시락 까먹고 놀다 보니 2022년도 화살처럼 내가 모르는 어디론가 부지런히 날아간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도시락 여행 도시락 여행 국경 검문소 와인 안주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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