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산과 들, 강이나 바다에 나갈 때면 으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속살거림이 등을 떠민다. 계몽주의 시대 장 자크 루소가 외쳤던 이 선언적 레토릭은 원래 18세기 당시에 세상을 옥죄고 있던 권위적인 사회제도와 문화적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성과 자유로움을 찾자는 부르짖음이다. 그 후 300여 년의 역사가 뒤척이면서 정치·사회제도는 괄목하게 시민의 편이 됐고, 인간의 실존적 본질도 많이 밝혀지고 존중돼 인간적인 삶이 크게 신장하였음은 분명하다.인류는 그렇게 되찾은 인간상을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또 다른 명제 앞에 서 있다. 빠른 도시화와 대중화, 과학기술의 첨단화는 인간성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고, 알고리즘이 사람들을 조종하는 시대에 기형적으로 변형되는 인간형을 우려하게 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구호는 이제 새로운 개념으로 옷을 갈아입은 격이다.
자연의 품에 안긴다고 곧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자연 안에 담긴 핵심적 원리와 섭리, 그리고 자연에 임하는 인간의 자세에 깊은 터득이 없다면 그 피상성이 수박 겉핥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낳는 졸탁(卒啄)의 신비, 서로 다름이 공존하는 조화의 메커니즘, 죽음과 삶의 윤회(輪廻), 만물이 어우러져서 거대한 세계가 운영되는 묘(妙)가 자연의 속성이고 원리 아닌가?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자연에서 나와 자연을 숨 쉬고 섭취하며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간 생명의 원형이며 본태이다. 그런 인간들이 안락하고 편리하게 살려고 자연을 무자비하게 정복하기 시작했다. 물론 자연 속의 무시무시한 위험을 누르지 않으면 편안할 수가 없어서 싸움은 시작됐을 것이다.
천재지변이나 맹수들의 공격, 기아, 각종 질병을 극복하는 인류의 지혜는 놀라웠다. 자연을 이기기 위한 문명은 내친김에 고도의 산업사회로 발전됐고, 인간은 지구의 게걸스러운 주인이 되었다. 자연은 끔찍하게 파괴됐고, 훼손됐다. 인간의 탐욕이 이대로 그악스럽다면, 문명이 인간을 계속 변형시키기만 한다면 인간의 몸과 마음이 자연의 품에 온전히 들어가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들은 더욱 편리해지고 싶고, 영리해지고 있어서 교묘하게 자연을 이용하고 차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날로 첨단화되고, 인간을 건조하고 고지능의 신인류로 변용시키며 자연스러움과는 반대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화해와 공생은 인간들이 자연 원리의 오묘함과 엄중함을 깨닫고, 내재해 있는 깊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첫걸음이다. 인간들은 자연 속에서 가치와 철학을 찾아야 하며, 그 순수함을 배우고, 배려한다는 뜻을 모아야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며, 그러면 인류의 퇴화를 면하고 번성을 찾게 될 것이다. 자연의 원리 속에는 지금까지의 문화도, 신의 섭리도, 미래의 비전도 모두 들어 있다. 자연을 온전히 품으면 자연도 자연히 인류의 편이 될 것이다.
송장길 / 언론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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