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아파트가 된 월가의 사무실
코로나 팬데믹이 뉴욕 금융 1번가의 사무실을 바꾸고 있다. 지난달 21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섬 남쪽,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가인 월가에 571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선다.증권거래소를 비롯해 각종 금융회사가 빼곡히 들어선 도심 한복판에 이런 규모의 아파트를 지을 땅이 있나 싶지만, 신축이 아니라 개축이다. 부동산 개발업자가 30층짜리 오피스 빌딩을 1억8000만 달러에 사들여 전체를 아파트로 개조할 계획이다.
1967년 지어진 이 건물이 55년 만에 용도 변경하게 된 까닭은 근무형태가 바뀌면서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인기를 끌면서 사무실 건물에 공실이 많아졌다. 기업들은 사무실을 줄이면서 더 세련된 디자인과 좋은 위치, 편의시설을 갖춘 곳으로 이사하고 있다.
거대한 회사 본점으로 임직원 모두가 출근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편의에 따라 작은 단위로 쪼개진 거점 사무실을 찾는 시대가 됐다.
수요가 줄어든 도심 사무실 건물은 주택난과 맞물려 주거 공간으로 떠올랐다. 아파트 검색 웹사이트 렌트카페(RentCafe)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에 워싱턴·시카고·버지니아 등과 같은 도시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서 사무실 1만3000개가 아파트로 전환됐다.
맨해튼 빌딩을 사들인 부동산 개발업자는 고쳐 쓰는 비용이 새 아파트를 짓는 것의 3분의 1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모든 빌딩에 같은 셈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 건물에 따라 비용이 더 들 수 있고, 도시마다 법적으로 갖춰야 할 주거 요건도 복잡하며, 수요도 받쳐줘야 한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일하는 공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도 변화는 시작됐다. 서울 지하철 역사 안에 근무공간이 생겨났다. 국내 공유오피스 기업인 스파크플러스가 만든 공유 오피스인데, 공간 해법이 참 절묘하다. 지하철 공사 입장에서는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상가 공실 문제가 골칫거리였고, 스파크플러스에게는 유동인구가 풍부한 역사 공간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공덕역·마들역·영등포구청역·왕십리역 안에 공유 오피스가 들어섰다.
스파크플러스가 지하철 사무실을 포함한 총 15개의 공유 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멤버십 이용권을 만들고 보니, 가장 이용객이 많은 공간은 노원구 상계동 마들역점(7호선)이었다. 아파트 단지 밀집 동네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됐지만, 여건상 집에서 일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지하철 역사 내 공유오피스를 찾았다. 팬데믹이 만든 새로운 지하철 풍경이다.
이런 추세라면 업무지구와 주거지, 상업지 등 용도에 따라 지역을 나누던 전통적인 도시계획의 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수였던 팬데믹 이후 도시에서는 집 가까이, 여러 용도가 섞인 공간을 원하고 있으니 흥미로운 일이다.
한은화 / 한국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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