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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가정 폭력이 남긴 상흔

피터스캐년 산에서 하이킹 중에 전화가 울렸다. 셸터를 떠난 후에도 가끔 만나 점심을 하는 S자매다. 안부를 묻기도 전에 “대문 앞에 팥죽을 두고 갑니다”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집에 돌아와 보자기를 열어보니 팥죽과 군고구마, 파김치, 곶감을 두고 갔다. 동짓날에 팥죽을 나누어 먹지 못해 조금 가져왔다는 쪽지도 남겼다.  
 
S자매는 오래전 어느 여름날 셸터에 왔다. 가정폭력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각지 못한 임신으로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배 속의 아기를 데리고 어떻게 사나 고민하다 마지막 희망으로 우리 기관에 전화했다.  
 
그녀는 20대에 미국으로 유학와 친구의 소개로 결혼했는데 결혼 초부터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의처증으로 폭력을 당했다. 그 긴 세월 무서운 악몽과 불면으로 지새운 밤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교육을 통해 깨달았다며 울었다. 그녀는 상담을 받으면서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기 시작했고 자신도 사랑 받았던 사람이었고 아직도 사랑 받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점점 회복되기 시작했다. 부족하고 능력 없는 자신이 아닌,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던 유능했던 자신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남편은 그녀를 의자에 묶고 골프채로 때렸다. 목을 조르기도 했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이대로 죽어야 하는가… 공포에 떨던 그 날도 남편이 던진 칼이 머리를 비켜서 유리창을 깼고 놀라서 지른 비명에 이웃집에서 경찰에 신고해 법정으로 가게 됐다. 재판 중 취하하라는 시집의 협박을 받고 결국 고소를 취하했다.  
 


가장 큰 걱정은 경제적으로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는 것과 도망가면 죽이겠다는 남편의 협박, 다른 사람들에게 받을 수치심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결국 계속되는 폭력을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셸터로 전화한 것이다.
 
그녀는 셸터에 온 지 4개월 후 딸을 출산했고 혼자 키울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도전과 용기, 살아갈 이유와 목적이 됐다. 1년간 거주할 수 있는 제2차 거주지를  찾아 다른 셸터로 가게 되면서 푸른 초장의 집에서 11개월 후 떠났다.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며 삶의 어려운 순간을 헤쳐 나가고 있는 자매를 보니 불안감과 슬픔에 차 있던 모습이 어느덧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때 낳은 딸이 올해로 벌써 스물두 살이 되어 대학을 다니면서 파트타임을 하고 생활을 돕는다. 이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오래된 자동차를 바꿀 형편은 못 된다. 그래도 그녀는 폭력을 벗어난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 피해 여성의 가정에서 일어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무서운 폭력이다. 피해 여성과 아이들을 폭력 가정에서 구출해 주어야 한다.  
 
다음날 S자매를 만났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마음이 아려왔다. 아직도 몸에 밴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다 생각이 떠오르면 가슴앓이를 한다고도 했다. 몸의 일부가 되어 화인으로 새겨진 상처는 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소멸하지 않을 것 같다고도 했다.  
 
어제 가져온 팥죽은 맘을 다해 준비해온 귀한 선물이다. 가치를 따질 수가 없다. 없는 가운데서 나누는 자매의 사랑이 마음에 울림이 되어 가슴에 스며든다. 마음이 아련하다.

엄영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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