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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선인장 이야기

신호철

신호철

작년 봄 아리조나 세도나에 다녀온 후 선인장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피닉스 공항에서 렌터카로 세도나로 가는 길에 몇 군데 Rest Area에서 짧은 여유를 즐겼다. 예상치 않게 그곳에서 만난 각종 선인장과 화려하게 핀 다육식물의 꽃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을 온통 설레이게 했다. 다양한 선인장의 모양과 크기에도 놀랐지만 선인장이 피워낸 꽃들은 가히 어느 꽃에 견주어도 단연 압도적인 색감과 모양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선인장 꽃들과 황토색 바위산의 위엄은 다른 행성의 낯선 곳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든든한 초록나무처럼 황량한 사막에 고고한 품위를 뽐내는 선인장에 나는 끌릴 수밖에 없었다.
 
벌써 오래 전 일이 되었다. LA로 이사가신 이 장로님이 애지중지 20년을 키우셨다는 선인장, 그런데 한 번도 꽃을 피우지 않았다는 말씀과 함께 꽃을 좋아하니 잘 키워보라고 선물로 주셨다. 선인장을 처음 키워본 나로서는 특별한 지식도 노하우도 없었던 탓에 햇빛이 강한 덱크에 내다 놓았다. 이 주가 지났을까? 아침에 나가보니 몸통 사이로 삐죽히 순이 돋아있었다. 몇일 후 꽃봉오리가 생기고 놀랍게도 다음날 핑크빛의 큰 꽃잎이 벌어지고 손바닥 만한 꽃이 피었다. 퇴근해서 사진을 찍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오후에 처에게 꽃이 오무라진다고 전화가 왔다. 돌아와 보니 꽃은 벌써 졌다. 그때의 난감함이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십 년을 기다려 피운 꽃이 반 나절만에 저버리고 말았다. 이십 년을 키우며 꽃 한번 보지 못한 이 장로님의 심정에 비하면 나는 행운이었나? 다시 꽃 피우려나? 며칠을 기대해 보았지만 꽃봉오리는 이내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고마워, 우리집에 와서 꽃피워주어서…” 이 장로님의 오랜 관심과 노력의 결실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나에게 행복이 돼주었다.  
 
요즘은 여러 모양의 다육이 식물과 작은 선인장을 집에서 관상용으로 키우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관리하기도 편하고 때로 예쁜 꽃을 피우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선인장도 일종의 다육식물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제 몸에 수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열대기후나 사막의 무더위에도 잘 적응하는 식물이다. 특별히 수분의 소비를 막기 위해 잎 대신 딱딱한 가시를 온몸에 지니고 있어 수개월 간의 건기에도 잘 견디어낸다. 사막에 살고 있는 새나 작은 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해 치열한 진화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이 온몸에 길고 뾰족한 가시를 가지게 되었다. 얼마 전 동물의 왕국 유튜브를 통해 표범이 고슴도치를 공격하다가 동그랗게 몸을 움추리고 긴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에게 봉변을 당하고 괴로워하는 표범의 난감한 표정을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선인장 가시도 수분의 소모를 막기 위해 잎이 가시로 변했겠지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도 포함되어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선인장 가시에 찔리면 잘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가시 표면에 톱니 같은 돌기가 있어 더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고 한다. 가시에 찔려본 사람은 그 고통스런 아픔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시는 위험한 것이다. 선인장의 가시든, 고슴도치의 온몸에 퍼져있는 가시든,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내뱉는 말의 가시든 가시는 조심히 다뤄야할 것이다.
 
몇 주 전 딸아이가 선인장을 메일로 오더 하려는데 하나 더 오더 하겠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높이는 4피트에 6~7인지 두께의 큰 선인장이었다. 그렇치 않아도 큰 선인장을 키우고 싶었는데 두말없이 승낙을 하고 몇일 후 긴 패키지에 잘 포장된 선인장이 도착했다. 목이 긴 화분에 선인장용 흙으로 심은 후 햇빛이 잘 드는 장소에 두었다. 물을 주지 않아서 죽는 경우보다 물을 자주 주어서 죽는 경우가 태반이니 물은 2주 후에 조금만 주면 된다는 딸아이의 신신당부의 말 그대로 했다. 3주쯤 지났을까? 딸아이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어젯밤 선인장에 꽃이 피려고 해서 자고 일어났더니 활짝 피었더라고, 직장에서 돌아와 보니 꽃이 지었더라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나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고, 세상엔 그런 일도 일어난다고, 다만 우리가 너무 우리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선인장은 10년, 20년을 기다려 꽃을 피워 반나절만 그 얼굴을 보이고 미련 없이 이내 져 버린다는 것을….(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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