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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지혜와 믿음

인생은 판단과 결정의 연속이다. 때로는 스스로, 때로는 다른 사람(전문가, 스승 등)의 조언을 듣고 판단하고 결정한다. 불교적 맥락에서 보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지혜’,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 결정하는 것을 ‘믿음’이라 할 수 있다. 둘 중 무엇에 의한 결정이 더 합리적이고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은, ‘가짜뉴스에 호도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며 상대 진영을 비난하기 바쁘다. 물론, 본인들이 팩트에 기초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설명을 빠뜨리는 법이 없다.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에 친구를 소개해 줬는데, 1년도 못되어 퇴사를 했다. 친구에게 들어보면 그 선배는 지독한 구두쇠에 사이코이며, 선배의 말에 따르면 필자의 친구는 천하에 없는 게으름뱅이에 무능하기 짝이 없는 직원이다. 역시 양측 모두 본인들은 언제나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동생이 건축 시공사에 근무한다. 어지간한 규모의 공사가 법적 분쟁 없이 마무리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공사 중 발생하는 사안들을 업주와 시공사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이다. 월드컵 대회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심판들조차 자국 경기에 심판을 보지 못하게 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정치권에서는 ‘내로남불’을 비난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客觀)이 불가능한 존재이다.
 
 노자 전공자들 사이에는 ‘노자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말이 회자된다. 역사적 실존 인물인 노자는 분명 한 사람이지만, 해석하는 사람의 수준이나 성향에 따라 천 가지 모습으로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말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은 노자뿐일까. 기독교와 불교의 수많은 종파를 보면 예수님과 부처님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종교는 물론 사회과학조차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는 자연과학의 사정은 어떨까. 과학적 결론의 기반인 ‘관측’은 언제 어느 경우에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한쪽 눈을 감고 다른 눈으로 코를 주시하면 코가 보인다. 안경 쓰신 분들은 안경테를 의식하는 순간 평소 보이지 않던 안경테가 보인다. 물리적으로 늘 시야에 있던 코와 안경테이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관측은 관찰자의 의식(경험, 지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의 이론 적재성(의존성)’의 전형적 예다. 중생은 분별과 주착이라는 색안경 때문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하신 2500년 전 부처님 말씀에 다름 아니다.
 
 엔진오일 교환 주기에 대해 정비소 아저씨는 3000마일, 유명 자동차 제조사인 H그룹 기술고문은 7000 마일을 권한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본인이 이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자동차학과에 진학하려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자동차에 대한 다수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서 최종 결정을 할 것이다.
 
마음공부와 진리공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쯤 되면 설사 충분히 이해가 안 되더라도 마음과 진리의 전문가인 성자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행위를, “왜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비과학적인 믿음에 의지에 네 인생을 결정하느냐” 라고 나무라기는 어려울 것 같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 교무·원불교미주서부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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